최근 우리나라 제조업은 평균 가동률이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반도체와 같은 특정 산업만 생산능력을 강화하는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호조세에 접어든 제조업종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에도 눈을 돌려 투자하는 등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제조업의 생산능력은 매년 꾸준히 커지고 있기는 하다. 2010년 100을 기준으로 할 때 1998년 54.5였던 생산능력지수는 2000년 65.3으로 60을 돌파했다. 2003년 70(71.7)을 돌파한 뒤 △2006년 80.9 △2009년 92.7 △2014년 110.4까지 올라섰다.
◆성장에 한계 있는 분야 구조조정 필요성 '高高'
문제는 생산능력지수가 업종별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많은 제조업종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심지어 뒷걸음질하고 있지만,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반도체 업종에 가려 전체 생산능력이 향상하고 있다는 착시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까지 한국 경제를 견인했다고 평가받은 자동차와 선박의 생산능력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동차용 엔진 및 자동차 제조업은 꾸준히 상승했지만 2011년과 2012년(101.6) 정점을 찍은 뒤 생산능력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선박 및 보트 건조업도 작년 조선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따라 생산능력이 내리막을 걷고 있다.
조선 등 업종 구조조정과 탈(脫)원전 정책 추진 등으로 인한 고급 인재의 해외 이탈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제조업 혁신의 관건 중 하나인 인재 확보 전쟁에서부터 뒤지고 있는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날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위주의 산업 성공에 안주한 결과가 제조업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며 "새로운 미래전략 산업이 탄생할 수 있는 규제 완화, R&D 투자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급 인재 해외 이탈 가속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떨어지는 것은 산업 구조조정이 더디게 진행되는 구조적인 측면과 함께 세계 경기 회복 지연이라는 경기 요인이 결합됐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제조업 구조조정이 지연돼 이제라도 규제개혁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대희 KDI 연구위원은 "가장 큰 원인은 구조조정 지연이다. 특히 방송·통신장비 업종의 경우 국내 생산을 하지 않고 생산시설이 해외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유휴 설비가 많이 남아돌아 가동률이 떨어진다"며 "세계 경기가 좋아지고 있어 제조업 가동률이 계속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반도체 생산은 올 초 좋았다가 최근 조정 단계에 들어갔는데, 가동률이 다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산업이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전체 가동률 자체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세계 경기가 나아지면서 조선업도 수주가 늘어 서서히 회복할 것"이라며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제조업 경쟁력을 갖추려면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경쟁을 많이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규제와 시장 진입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조업 생산과잉 상태
제조업 구조조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제조업 평균 가동률 하락은 수출과 내수가 다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최근 수출 및 내수가 다 좋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막상 제조업 평균 가동률을 보면 그렇지 않다"며 "최근 가동률 하락은 경기 요인이 크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수요가 생각보다 좋은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2010년부터 계속해서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다면, 이는 추세적인 평균 가동률 하락으로 볼 수도 있다. 추세적인 하락은 대(對) 중국 수출 부진의 영향"이라며 "우리나라 제조업 제품의 상당수가 중국에 수출되는데, 중국 수출이 줄어들다 보니 가동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제조업은 생산과잉 상태인데 특히 IT 분야 구조조정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반도체를 제외하고 선전하는 업종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업이 위기인 건 맞다. 장기 경기침체가 계속됐고, 내수 관련 제조업이 약화했다"며 "수출도 몇 개 업종에 집중되어 있다. 보이지 않았을 뿐 수출 제조업의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정책을 보면 제조업에 부담스러운 것들이 많은데, 앞으로도 제조업 기반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반도체 외 다른 산업군에는 글로벌 대표기업이 없다. 자동차도 국제경쟁에 노출되어 있는데 중국시장이 어려워지면서 위기를 겪고 있어 대표기업을 만들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조업 위주 성장 재검토해야
반면 제조업 위주의 성장을 다시 돌아봐야 할 때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나왔다. 투자 촉진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소비 수요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제조업 가동률이 낮은 것은 경기가 나쁘거나 공장설비가 과잉이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든 경기 수준을 더 끌어올리기 전에는 공장에 대한 투자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경기를 끌어올리는 투자 촉진 이외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사람들의 호주머니에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을 늘려야 최종소비재를 만드는 제조업이 살아나고, 전반적인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정책의 대상은 국내 총수요가 되어야 한다. 경제 중에서 내수 비중 강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며 "총수요를 늘리려면 소비수요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 전체 수요에서 소비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선진국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수산업은 제조업·수출산업 보다는 중소기업, 개인 자영업 비중이 높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중소기업이나 개인 자영업의 발전이나 구조개혁으로 풀어야 한다"며 "내수가 늘어나면 투자하지 말라고 해도 기업들이 투자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