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핵실험과 아홉 번째의 이번 유엔 제재 결의를 보고 있으면 똑같은 경험을 반복하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이제는 전략적 사고를 전환하고 북한 핵에 대한 억지에서 통일까지 계산에 넣는 거대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양기웅 한림대교수 국제정치학 |
1987년 소련은 동독에 SS-20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했다. 이에 대응하여 서독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서독 미군기지에 10분 내 모스크바를 파괴할 수 있는 미국의 중거리 핵미사일 퍼싱 II(Pershing II)와 크루즈 미사일을 배치하는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퍼싱II 배치는 소련과의 핵 균형을 이루기 위한 군사적 조치임과 동시에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확보하는 정치적 수단이었던 것이다.
‘거대한 전략’의 출구는 한·미·일과 중국의 빅딜이다. 중국도 북한과 동아시아 유일의 핵보유국 지위를 나누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한·미·일은 중국을 상대로 북한은 더 이상 전략적 완충공간이 아니라 정치·군사·경제적 부담임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핵을 폐기하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고 어떠한 미래에도 한·미동맹군이 북한 영토로 단 1미터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해야 한다.
동서독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4대국은 1990년 5월 5일부터 4차례에 걸쳐 회담을 개최(2+4회담), ‘독일문제의 최종 해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핵심 쟁점은 통일독일의 나토 잔류 문제였다. 미국은 장래 통일독일이 자국 영토의 비무장화를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하여 독일의 나토 잔류를 위하여 소련을 설득했다. 독일통일 후 나토 관할권은 1인치도 확대되지 않을 것이며, 특히 동독영토 안으로 군사력을 확대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약속과 미·소의 빅딜이 독일의 통일을 성사시킨 것이다.
한국이 중국과 직접 빅딜을 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미·일과 중국의 빅딜은 가능할 수 있다. 빅딜은 한국을 빼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안고 가는 한·미·일과 중국 빅딜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여 미국과의 동맹에서 방기되지 않도록 내적 견제를 걸어야 하고, 동북아의 핵 도미노보다는 미국의 확장 억지력에 기반을 둔 한·미·일과 중국 빅딜이 러시아에게도 더 유리함을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는 이제 압박과 대화로는 해결할 수 없다. 힘과 외교가 정교하게 결합된 거대한 전략이 절실하다. 한반도에서 핵 억지와 균형을 만들어내는 것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면서 한반도 평화공존, 통일, 동북아 세력균형까지 시야에 넣는 담대하고 거대한 외교책략을 설계해야 한다.
양기웅 한림대교수 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