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판이 잔뜩 쌓여 있는 공방에서 때로는 경쾌하고, 때로는 둔탁한 망치소리가 새어나왔다. 공방 안을 들여다보니 중년의 남성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무판을 다듬고 있었다. 수차례의 망치질과 함께 투박해 보이는 손에 쥔 칼과 끌이 지나면 나무판에는 마법처럼 글씨와 그림이 나타났다.
김재용씨가 울산 동구 남목동 그의 공방에서 자신이 만든 서각 작품 앞에 서있다. 이보람 기자 |
칼과 끌로 목판에 글과 그림를 새기는 ‘서각’이다. 조금은 특별한 서각 장인 남경 김재용(56)씨를 14일 울산시 동구 남목동에 위치한 그의 공방에서 만났다.
김씨는 조금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서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자동차를 만드는 생산직 근로자에서 서각 장인이 됐기 때문이다. 1986년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입사해 31년째 근무 중이다. 수십년간 공구를 들던 손 끝에서 이제는 힘이 있는 글자가, 반구대 암각화 속의 고래가 나타난다.
취미로 시작했던 서각으로 그는 지난해 4월에는 대한민국 남북통일 예술협회에서 ‘공예명장(서각)’ 타이틀을 얻었다. 12월에는 대한민국 장인예술협회의 ‘대한민국 장인’이 됐다. 장인예술협회에서 서각 장인은 그가 유일하다.
그와 서각의 인연은 2002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서각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김씨는 “집 근처에 공방이 하나 있었는데, 지나칠 때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망치소리에 ‘무엇을 하는 곳일까’하는 호기심만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호기심을 풀기 위해 들른 공방에서 그는 ‘아, 이거다!’하는 번뜩임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무렵 그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서각은 하루 종일 실내에서 할 수 있으니 나이가 들어도 계속 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서각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칼과 끌을 갈고 보관하는 법부터 배웠다. 나무 위에 일직선을 새기길 수차례. 그런 다음에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고 모방했다. 글자 두 줄을 새기는 데 하루종일 걸리기도 했지만 지겨운 줄 몰랐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서각에 매달렸다. 오전 근무일 때는 일을 마치자마자 공방으로 달려갔고, 오후 근무일 때는 눈을 떠서 출근할 때까지 공방에 있었다. 주말이면 서각 작품을 보러 전국을 다녔다. 인간이 표현할 수 없는 나무가 가진 무늬, 그 위에 새겨진 글과 그림, 다양한 채색까지. 썩어서 버려진 나무도 망치와 칼이 지나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그런 서각 작품을 만나고, 직접 만들어볼수록 매료됐다.
양각을 할 때 고무망치로 있는 힘껏 두드릴 때는 스트레스가 해소됐고, 쇠망치로 두드릴 때 나는 경쾌한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김씨는 “나무를 고르고, 표면을 다듬고, 어떤 글과 그림을 어떤 구도로 새길지 고민하고, 수만 번 망치로 두드리며 하나하나 새겨나가는 인내 끝에 만날 수 있는 것이 서각”이라며 “과정 하나하나가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서각을 배운 지 3년쯤 됐을 때부터 대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나간 대회는 서울에서 열린 한국예술협회 서각대회였다. 결과는 입선이었지만,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이후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대회에 50여회 나갔다. 2009년 대한민국 남북통일대전에서는 우수상을 수상했고, 2014년 열린 제35회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에서는 서각부문 최우수상을 타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최근 울산서화예술진흥회가 주최한 ‘제14회 울산전국서예문인화대전’에서는 작품 ‘청화선생시구’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열어 25점을 선보였다.
은퇴를 앞둔 김씨의 목표는 국가가 인증하는 서각 명장이 되는 것이다. 서각을 활성화하는 데도 관심이 많다. 한국서각협회 울산지회장을 맡아 서각 전시회를 여는 등 대중과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제자 15명도 양성하고 있다.
그는 “서각이 삶을 살아가는 데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서각이 가진 매력을 알 수 있도록 작지만 힘을 보탤 계획”이라고 말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