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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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북 ‘제재·대화’ 동시 천명한 문 대통령 유엔총회 연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며 “북한이 이제라도 역사의 바른 편에 서는 결단을 내린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이어 “스스로를 고립과 몰락으로 이끄는 무모한 선택을 즉각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며 핵무기를 검증 가능하게 불가역적으로 포기할 것을 북한에 촉구했다. “자칫 지나치게 긴장을 격화시키거나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로 평화가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북핵문제를 둘러싼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강력한 대북제재를 언급했으나 대화와 평화를 강조하느라 부각되지 못했다. 촛불과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국민 생명·안전을 위협하는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할 구체적인 방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이번 유엔총회 기조연설은 한반도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국 입장에서 전 세계에 메시지를 보내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조연설에서 ‘북한 완전 파괴’라는 초강경 경고 메시지를 낸 것과는 판이한 내용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기조연설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대화가 아니라 압박”이라며 국제사회의 대북 포위망 구축을 주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도 차이가 난다. 문 대통령이 보다 단호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전쟁을 원하거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수차에 걸친 우리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 채 핵·미사일 질주를 계속해온 만큼 대화는 현실성이 없다. 북의 도발을 막으려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함께 보조를 맞추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정부는 어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고 세계식량계획(WFP)과 유니세프의 북한 모자보건·영양지원 사업에 남북협력기금에서 800만달러를 공여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지원은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처음이다. 지원 시기와 규모는 남북관계 등 전반적 여건을 고려해 추진키로 했다지만 적절한 조치인지 의문이다. 미국·일본의 시선도 곱지 않다.

대북 제재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끊임없이 대북 대화 제스처를 쓰면 북한이나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한·미·일 공조에 불협화음을 일으킨다는 오해를 살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흐름을 바로 읽고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손질하는 일이 화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