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낮은 득표율로 총선에서 ‘씁쓸한 승리’를 거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극우 정당 출현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연정을 통한 정치적 재기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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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4기 정국 구상 밝히는 메르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5일(현지시간) 베를린의 기독민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총선 이후 연정 구성 방향을 밝힌 뒤 위쪽을 쳐다보고 있다. 베를린=AP연합뉴스 |
메르켈 총리는 25일(현지시간) 베를린 기독민주당(CDU)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논란이 많은 난민 정책 때문에 독일을 양극화시켰다”며 “이번 결과에 변명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나치 이후 처음으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연방의회에 진출한 것에 자신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독일 국경을 개방한 정책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연정을 통한 차기 정부 구성을 올해 크리스마스 전까지 완료하겠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난민에 반대하는 이들은 물대포를 쏘라고 말했지만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여전히 난민 개방 정책을 선택할 것”이라며 “우리 앞에는 다음 정부를 구성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 과제가 실패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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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D 돌풍 주역 페트리, 총선 직후 탈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프라우케 페트리 공동 대표가 25일(현지시간) 베를린 당사에서 탈당을 선언한 뒤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베를린=AP연합뉴스 |
메르켈의 이런 다짐에도 연정 파트너 정당 간 이념 차이가 큰 데다 연정 이후에도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동독 지역을 달랠 카드가 마땅치 않아 정국 불안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 4년 동안 연정에 참여한 사회민주당(SPD)이 불참을 선언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파트너는 기사당(CSU), 자민당(FDP), 녹색당인데 벌써부터 연정 참여 조건을 내걸며 협상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우선 바이에른주에서 지지율이 10%포인트 폭락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기사당의 호르트 제호퍼 대표는 이날 “매년 들어오는 난민의 상한선을 설정하지 않으면 연정에 참여할 수 없다”며 “AfD에 빼앗긴 지지율을 가져오기 위해 메르켈에 우파 정책을 선택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민당의 한 당직자는 “(난민에 우호적이며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당과 기사당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밝혔다. 아울러 새로운 연정 논의가 옛 서독 지역 주민에게만 연관된 문제로 비칠 수 있어 자칫 옛 동독 지역이 총선 이후 오히려 더욱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실제 이번 총선에서 AfD는 옛 동독 지역에서 기민당(28.2%)에 이어 22.5%를 득표했고, 작센주에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좌파당을 이끌었던 그레고어 기시는 “AfD가 약진한 것은 1990년 통일 이후 2등 국민이 됐다는 옛 동독 주민들의 열패감 때문”이라며 “난민 문제는 이 여론을 자극만 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