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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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섬소녀’서 투혼의 리베로로… “태극마크 꼭 달거예요”

IBK기업은행 배구단에 새 둥지 튼 김혜선
인생이란 ‘새옹지마’의 연속이다. 불운이 계속되는 듯하다가도 불현듯 기회가 찾아온다. 다만, 이 기회를 누구나 잡을 수는 없다. 언젠가 찾아올 단 한 번의 기회를 기다리며 꾸준히 자신을 단련한 사람에게만 ‘반전’의 자격이 생긴다. 올해 오프시즌 동안 흥국생명을 떠나 IBK기업은행에 새 둥지를 튼 리베로 김혜선(26)에게는 이번 여름이 이런 기회의 시기다.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이 이어지며 배구를 포기할 위기에도 처했지만 꾸준한 준비와 단호한 결단으로 ‘제2의 배구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경기도 용인시 IBK기업은행 기흥체육관에서 만난 김혜선은 “운동이 너무 힘들지만 제대로 운동하는 느낌이라 행복하다”며 밝게 웃었다.
여자프로배구 IBK기업은행 김혜선이 지난 25일 경기도 용인시 IBK기업은행 체육관에서 배구공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서필웅 기자

지난 3월 2016∼2017 V리그 챔피언결정전이 끝난 이후 김혜선에게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2009년 리베로로서는 높은 순위인 1라운드 5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한 김혜선은 이후 빠른 순발력과 작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 투지로 주목받는 젊은 리베로로 떠올랐다. 배구선수로는 이례적인 전남 신안군 압해도 출신으로 팬들로부터 ‘섬소녀’라는 귀여운 애칭도 얻었다. 하지만 언제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코트에 몸을 던지는 과감한 플레이스타일 때문이었다. 급기야 소속팀 흥국생명이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지난 시즌 후배 한지현에게 주전 리베로 자리까지 내줬고, 오프시즌에 팀이 김해란, 남지연 등 베테랑 리베로를 영입하며 방출 대상으로까지 지목됐다.

이때 김혜선은 팀에 은퇴처리를 요구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은퇴가 아닌 방출일 경우 ‘임의탈퇴’로 처리돼 다시 프로에서 뛸 수 없는 V리그 독소조항을 피하기 위해 담판에 나선 것이다. 김혜선은 “배구를 계속하려면 과감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결국 김혜선의 의지는 관철됐고 이후 관심을 보인 IBK기업은행에 새 둥지를 틀 수 있게 됐다. 그는 “스스로에게 믿음이 있었다. 다만 지난해 우승팀인 기업은행이 나를 부를 줄은 몰랐다. 연락이 와서 많이 놀랐다”고 털어 놓았다. 물론 이는 행운의 결과가 아니다. 불확실함 속에서 꾸준히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김혜선은 “흥국생명 시절 언제나 허리가 안 좋았었는데 오프시즌 보강운동을 꾸준히 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정말 운동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 덕분인지 혹독하기로 유명한 IBK기업은행 훈련에도 끄떡없이 적응 중이다. 

게다가 새 팀에서 막중한 임무까지 주어졌다. FA보상선수로 흥국생명으로 이적한 남지연 대신 주전 리베로 자리를 맡게 됐다. 지난 13∼23일 시즌 전초전으로 열린 2017 천안·넵스컵 프로배구대회에서 IBK기업은행은 김혜선과 노란, 채선아 3명으로 리베로 진용을 구성했다. 이중 전문 리베로 경험이 있는 것은 김혜선뿐이다. 팀 리베로 진용을 사실상 이끌어야 한다. 자신이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는 것도 새삼 느끼고 있다. 김혜선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상황인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임무를 완수만 한다면 선수로서 한단계 성장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김혜선은 “이정철 감독님이 공을 항상 흡수하라며 안정적인 리베로가 되기를 주문한다. 수비진 전반을 이끄는 리더십도 요구해서 목소리도 더 크게 내고 말도 많이 하려고 한다”며 “부담도 되지만 열심히 해서 실력을 쌓아놓으면 앞으로의 선수생활에 큰 보탬이 될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새로운 목표도 세웠다. 올 시즌 활약을 바탕으로 김해란, 남지연 등을 이을 차세대 국가대표 리베로에 도전한다는 각오다. 최근 열린 월드그랑프리, 세계선수권 아시아예선 등에서 김연견(현대건설), 나현정(GS칼텍스) 등 경쟁자들이 먼저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반드시 역전하겠다고 여러번 다짐했다. 그는 “앞서나가는 선수들을 보면서 각오를 많이 다졌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털어놨다. 물론 이를 위한 1차 목표는 팀의 우승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는 “내가 잘해서 IBK기업은행이 왕좌를 지키는 데에 힘을 보태겠다. 그러면 언제나 그렇듯 또 다른 기회가 올 것으로 믿는다”며 밝게 웃었다.

글·사진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