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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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영화산책] 늦기 전에

추석이 다가온다. 많은 사람이 고향과 가족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 시기이다. 가족이 있는 집은 바쁘고 고단한 삶을 위로받을 수 있는 우리가 돌아갈 곳이다. 그러나 삶이 녹녹지 않은 만큼 이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영화 ‘5일의 마중’(감독 장이머우)의 원제는 ‘귀래’(歸來·영어명 Coming Home)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가족사랑은 눈물겹고 가슴 먹먹하면서도 따스한 감동이 오래도록 남는다. 이 영화는 ‘우리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로 번역된 엄가령의 ‘범죄자 루옌스’라는 소설이 원작이다.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지만 반동분자로 몰린 루옌스(천다오밍)가 10여년의 감옥살이 동안 갖은 고초를 당하면서 뒤늦게 가족과 아내 평완위(궁리)의 소중함을 깨닫고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집으로 돌아오게 됐지만, 아내는 심인성 기억상실증으로 루옌스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이야기다. 소설은 루옌스가 14살이었던 1921년부터 1990년까지의 긴 일대기 중심으로 서술돼 있지만, 영화는 집으로 돌아온 루옌스와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의 이야기인 소설의 뒷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역사적 격변기 지식인 가족의 비극을 영화는 남편과 아내 각각의 사랑을 통해 그려낸다. 루옌스가 탈옥했을 때, 아내 평완위는 그와 함께 도망치려고 준비한다. 그러나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반동분자 아버지를 인정하지 못하는 딸 단단(장후이원)의 방해로 경찰에게 잡혀가는 루옌스를 따라가려다 넘어지게 되면서 그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된다. 남편의 편지에 씌어 있던 출소 날짜 5일만 기억하는 그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달 5일마다 기차역으로 마중 나간다. 젊은 시절 남편의 얼굴만 기억하는 그녀는 남편이 돌아왔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의 기억을 되찾게 하려는 루옌스의 노력도 감동적이지만, 펑완위의 현재 상태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루옌스의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다가온다. 루옌스는 젊은 시절 한때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기로 했을 때 아내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소중함은 그것이 없어졌을 때 깨닫게 되듯, 가족에 대한 사랑은 뒤늦게 찾아오기에 정작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신이 인간에게 준 잔인함이다. 추석에 가족을 만나면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자. 더 늦어서 표현할 수도 없을 때 안타까울 수 있으니.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