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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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단풍 시즌

추석 연휴에 설악산으로 산행을 다녀온 친구가 카톡으로 공룡능선 구간 단풍 사진을 보내왔다. “친구야!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한다. 3개월도 안 남은 한 해 잘 마무리하자”는 짧은 글과 함께.

 

그러고 보니 단풍철이다. 지난달 하순 설악산과 오대산에서 첫 단풍이 시작된 이후 매일 20km 속도로 남하 중이다. 단풍은 산 전체의 2할 면적이 물들 때가 첫 단풍, 8할이 물들 때는 절정이라고 한다. 대청봉에서 시작된 설악산 단풍은 한계령까지 내려온 상태다. 다음주 중엔 십이선녀탕 계곡과 백담사 계곡도 붉게 물든다. 북한산, 내장산, 지리산으로 번져 이달 말에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이룬다.

 

개인적으로 단풍 명소를 꼽으라면 2년 전 가봤던 지리산 피아골이다. 지리산 주능선 삼도봉과 노고단 사이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모여드는 골짜기인 피아골 단풍은 ‘삼홍’으로도 불린다. 온산이 붉어 ‘산홍’, 그 붉은빛이 물에 비치어 ‘수홍’, 그 물속 붉은빛이 사람 얼굴을 붉게 해 ‘인홍’이다. 고요한 남도의 만추를 느낄 수 있었다.

 

단풍은 최저 기온이 섭씨 7도 전후인 날씨가 며칠간 계속되어야 잎이 물 든다고 한다. 식물 잎에 있던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원래 그 식물의 잎에 들어있는 색소의 색으로 변하게 된다. 황엽은 엽록소가 분해되고 크산토필이라는 색소가 많아져 노랗게 되고, 홍엽은 안토사이안이나 크리산테인이라는 색소가 많아져 붉게 된다고 한다.

 

단풍은 단순한 수목이 겨울을 나는 한 과정일 뿐일 수도 있으나 단풍객에겐 낭만과 힐링을 넘어 배움을 준다. 너나 할 것 없이 이맘때면 낙엽귀근(落葉歸根), 일엽지추(一葉知秋)를 떠올리는 철학자가 된다. 미당 서정주 선생도 오죽하면 ‘추일미음(秋日微吟)’에서 이렇게 읊었겠는가.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맨드라미 촉계는 붉은 물이 들었지만/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안타까운 일은 2050년쯤 되면 지구 온난화로 아열대화가 진행돼 한반도에서 단풍을 구경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의 아이들은 자연의 선물인 단풍을 책으로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삭막하다.

 

박태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