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한제국이 추진했던 중립국 외교를 일제 침략주의에 대항한 평화운동의 시원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아 12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학술심포지엄에서 ‘대한제국의 산업근대화와 중립국 승인 외교’를 주제로 1900년 전후 대한제국이 펼친 외교 전략을 분석해 발표했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의 모습. 한국문화재단 제공 |
이 같은 분위기 속에 대한제국이 만국우편조약, 적십자조약 등에 가입해 국제사회 속에 존재를 드러내고, 유럽의 중립국인 벨기에, 덴마크와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제국은 1902년 10월 각국의 특사를 초대해 고종의 즉위 40년 칭경(경축) 예식을 열고, 이 자리에서 중립국임을 승인받으려고 했다”며 “이 계획은 콜레라가 만연해 예식이 연기되면서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국제사회의 새 조류를 의식하고, 침략적 팽창주의를 내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 명예교수는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일본이 한반도를 보호하는 것이 곧 ‘동양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거짓 선전을 했다”며 “대한제국은 이러한 기만행위의 반대편에서 맞서는 외교정략을 폈지만, 러일전쟁의 개전으로 모든 것이 중단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중립국 외교에 실질적 걸림돌로 작용한 사건은 제1차 영일동맹이었다. 영국과 일본은 1902년 1월 각각 청과 대한제국에서 정치적·상업적 이익을 상호 보장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이 명예교수는 “영일동맹에는 대한제국의 산업 근대화를 위한 외국 차관 교섭과 이와 병행한 중립국 승인 외교를 차단하려는 목적이 있었다”며 “중립국 외교는 일본의 방해와 저지 정책으로 모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한반도를 보호하는 것이 ‘동양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거짓 선전해 영국과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을 농락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한제국이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주권수호 및 회복원동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대한제국의 산업화 차관 교섭 및 중립국 승인 외교는 일제 침략주의에 대항한 평화운동의 시원으로 재평가되어야 마땅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