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여)씨는 지난해 경찰 조사를 받던 도중 이런 내용의 메시지를 받고 소름이 끼쳤다. 불특정 여성의 외모를 비하하는 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 활동을 하던 A씨는 당시 담당 경찰관과 신원 확인을 하던 중이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A씨와 온라인상에서 공박을 벌였던 남성 네티즌이었다. 그 역시 같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중 A씨와 경찰의 대화 내용을 듣고 연락한 것이다.
이후 A씨의 신상정보는 특정 사이트를 중심으로 퍼졌고 본격적인 악몽이 시작됐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메시지를 보냈다. 심지어 수십 명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반복적으로 초대돼 성희롱 발언과 욕설을 듣기도 했다. A씨는 이제 모자와 마스크 없이는 외출도 할 수 없다.
‘맘충’, ‘김치녀’, ‘똥꼬충’….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상의 혐오표현이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이제는 이런 혐오공격의 표적이 되거나 대항한 사람들의 신상이 공개돼 직접적인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까지 이르렀다.
18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온라인상 모욕 혐의와 관련한 1심 판결문 373건을 분석한 결과 젠더(사회적 성)·장애·인종·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는 ‘혐오표현’ 관련 사건이 34.3%인 128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돼 문제가 된 경우는 32건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혐오표현을 사용한 혐의(모욕)로 기소된 사건 중 10건은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복, 협박 혐의를 같이 받고 있었다. 또 공포나 불안감 조성으로 정보통신망법을 위반한 경우는 5건, 보복성 불법 촬영물 등을 포함한 음란물 유포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경우도 4건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가해자에 적극적인 대응을 주저하고 있다. 특히 성소수자의 경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성 정체성이 드러나는 ‘아웃팅’, 이로 인한 실직 등의 불이익을 우려해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막상 신고를 한다 해도 수사기관의 미온적 태도에 절망하기도 한다. 여성주의 활동가 B씨는 지난여름 자신의 사진이 특정 사이트에 게시돼 외모와 인격을 모욕하는 댓글이 무수히 달린 것을 알고 경찰서를 찾아갔다. 그러나 오히려 “음담패설이긴 하지만 칭찬으로 볼 수 있지 않으냐”는 경찰관의 말을 듣고 고소를 포기했다.
이는 온라인 공간이 이용자 사이의 평등성이 보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실의 차별 혹은 격차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지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혐오표현에 또 다른 혐오표현으로 맞서는 경우가 생기는 등 온라인에서의 갈등은 마치 같은 조건에서 벌이는 싸움처럼 보이지만 많은 여성과 성소수자 등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차별과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며 “당사자의 개인적 문제가 아닌,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