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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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코드 인사’ 아쉬움 남긴 새 헌법재판관 지명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공석인 헌법재판관 한 자리에 유남석 광주고등법원장을 지명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유 후보자는 실력파 법관이자 이론과 경험이 풍부해 헌법 수호와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재판관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할 적임자”라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유 재판관 후보자 지명은 이유정 전 후보자가 ‘주식 대박’ 논란 끝에 지난달 1일 사퇴한 지 47일 만이다. 헌법재판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긴 하지만 헌재소장과 달리 국회 임명동의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유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헌재의 ‘9인 재판관 체제’가 9개월여 만에 완성된다.

유 후보자 지명은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우선 헌재 체제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 청와대로서는 김 권한대행 체제를 장기화하려고 했다가 재판관 전원이 사실상 공개 반발하고 나서자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 10일 헌법재판관들의 동의를 내세워 김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유 후보자는 헌법에 밝고 다른 판사들에 비해 정치색이 엷다는 평을 듣고 있으나 편향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법원 내 개혁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창립 회원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박정화 대법관, 법무부 첫 비검찰 출신인 이용구 법무실장 등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또 우리법연구회냐”는 말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유 후보자 지명 이후에도 소장 권한대행 체제 논란은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유 후보자를 차기 소장에 지명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다. 청문회를 통과해 임명되면 소장 후보자가 될 수 있는 재판관 9명 중 1명이라고만 언급했다. 하지만 현재 재판관 8명 중 7명의 임기가 2년도 채 남지 않은 만큼 유 후보자를 소장 카드로 쓸 공산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향후 유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을 거쳐 소장으로 발탁된다면 코드 인사 논란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헌재소장과 대법원장이 모두 특정 모임 출신으로 채워지게 돼 국회 인준 과정에서 상당한 정치적 파장이 불가피하다. 정치권 갈등을 해결해야 할 최고 헌법기관이 또다시 정쟁의 중심에 서지 않을까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