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현 지음/창비/1만8000원 |
지난해 말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시작된 ‘태극기 집회’.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은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탄핵 반대 집회에 들고 나온 것을 두고 의문을 표한다.
신간 ‘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태극기 집회에 나온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힌트를 제시한다.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과의 남태현 교수는 이 책에서 사람들의 행동 뒤에 정치 이데올로기가 있음을 지적하며 정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한국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로 ‘반북’(反北)과 ‘경제발전’, ‘친미’를 꼽는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공산주의를 단호하게 거부한’ 정치적 산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을 ‘태생적 반공국가’로 간주한다. 특히 반공을 국시(國是)로 삼았던 군사정부가 들어서며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 불이 붙었다. 이러한 체제 경쟁의 핵심에는 산업화가 있다. 산업화 이전에는 북한 경제가 남한보다 앞서 있었지만, 정부의 산업화를 통해 상황이 역전됐다. 그런 까닭에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경제성장을 이뤄낸 군사정부가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과 교수는 “한국의 보수주의는 반북·경제성장·친미라는 가치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 12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며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 연합뉴스 |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이 태극기 집회에 나선 것을 두고 “보수주의의 배경을 이해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보수단체들의 집회에 성조기가 나부끼고 미군의 존재가 당연시되고 매번 미국산 무기를 사고 별말 없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승인하고 반미는 자동으로 종북이 되는 등의 일은 이런 보수 이데올로기가 사회적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한국의 정치는 일부 기득권 세력이 정치 이데올로기라는 도구를 이용해 정치를 움직인다고 지적한다. 또 일부 기득권에 의한 독점으로 이데올로기가 발전 없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대표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들을 소개하며 현실에서 이데올로기와 정치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살핀다. 중국과 티베트 분쟁 뒤에 자리한 민족주의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배경이 되는 시오니즘, 같은 사회주의를 내세웠지만 성공한 스웨덴과 실패한 베네수엘라의 사례 등 오늘날 뉴스의 배경이 되는 정치 이데올로기들을 설명한다.
책은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가 옳다 그르다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양한 물건이 많고 가게도 많은 시장이 좋은 시장이듯, 정치 이데올로기 시장도 다양할수록 좋다고 말한다. 소위 말하는 ‘수구꼴통’이나 ‘종북좌빨’이 없는 사회가 생각처럼 온전하게 굴러갈 수 없다며 ‘종북좌빨이든 수구꼴통이든 대립되는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피력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