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가 26일 중앙선관위의 정치기부금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13년 21.9%였던 기탁금 비중이 지난해에는 7.3%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기탁금 납부실적은 계속 감소하는 가운데 후원금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온 결과다. 국회의원 후원금은 1인당 연간 모집 상한액이 1억5000만원이었던 2011년 310억여원, 2013년 381억여원, 2015년 363억여원이었고, 공직선거가 있어 3억원으로 상한액이 늘어난 2012년, 2014년, 지난해는 각각 448억여원, 504억여원, 535억여원이었다. 반면 기탁금은 2011년 86억여원, 2012년 92억여원, 2013년 107억여원으로 꾸준히 늘다가 2014년 44억여원, 2015년 56억여원, 지난해 41억여원으로 기부 열기가 잦아들었다.
정치 불신과 경제적 어려움 등의 문제로 정치기부 문화가 제자리에 머물러 있음에도 후원금 실적이 유지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전·현직 국회의원이 동료 의원 후원회에 고액을 납부하는 ‘품앗이 기부’, 기초·광역의원이나 기초자치단체장이 해당 지역구 의원에게 후원하는 ‘지역구 상납 기부’ 등의 관행이 끊이지 않아서다. 현역 의원이 이들에게 후원금을 받으면 지방선거 공천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지만 현행 정치자금법상 별도의 제약을 두지 않고 있다.
후원금이 입법로비 통로로 악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불거진 ‘청목회 사건’이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가 청원경찰의 처우 개선을 목표로 관련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회원들과 가족·친지의 명의로 ‘쪼개기 후원금’을 납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혐오, 무당파 증가로 기부금 타격
기탁금은 정치인에 대한 입법 청탁이나 공천 영향권에 대한 상납 의혹에서 자유롭다는 게 장점이다. 선관위가 기탁금을 모두 한 주머니에 담아 총액을 합산한 뒤 각 정당에 배분하기 때문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현장에서 정치기부금 홍보활동을 하다보면,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집단을 위한 후원금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기탁금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정치참여의 측면에서 기부 독려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순수한 목적의 기탁금 납부가 줄어든 것은 정치혐오 문화가 국민 저변에 자리 잡으면서 무당파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정치가 우리 국민의 갈등을 해소하거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정당 정치에 관심을 둘 만큼의 여유가 없는 경제적 요인도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시방편 아닌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 우선”
전문가들은 소액다수 정치기부금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한국정치의 만성적인 문제점부터 치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이 기부한 정치자금이 얼마나 투명하게 사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정치 전반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관옥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은 정치자금 모금을 손쉽게 할 수 있지만, 별도 기구 등을 통해서 사용처를 엄격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돈을 내놓는 것”이라며 “내가 기부한 돈이 공정하게 잘 쓰이고 있다는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신속하고 투명한 정치자금 정보공개를 의무화하고, 원래 목적이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은 자금 사용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며 “신뢰가 쌓이면 국민의 관심과 참여는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관위는 지난해 8월 정당과 정치인이 사용한 정치자금을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상시 공개하는 내용이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박세준·임국정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