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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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행정개혁 없이 국정개혁 성공 없다

행정 통해 실현돼야 좋은 정책 / 획일·보신 행정 탈피 변화 수용 / 공무원 전문성·윤리성 제고 시급
적폐청산은 문재인정부의 중요 정책과제의 하나이다. 국민도 적폐청산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적폐청산이 최종목표가 될 수는 없다. 최종 목표는 적폐청산을 통한 국정개혁이 돼야 한다. 국정개혁은 정치개혁과 행정개혁을 포함한다. 그런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후 국민을 위한 소통정치로 정치가 변하고 있고 일자리정책, 주거정책 등 새로운 정책도 제시되고 있지만 행정개혁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행정을 통해 구체화되지 않으면 구두선이 되고 성과를 거둘 수 없는데 말이다.

문제는 현재의 행정시스템과 공무원의 의식이 새로운 정치와 정책을 담아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인 국정운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행정제도, 공무원의 의식은 개발시대에 맞추어져 있어 획일적이다. 우선, 행정기준이 획일적으로 정해져 있다. 획일적 행정기준에 맞으면 받아들이고,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기준에 맞지 않으면 기준을 바꾸지 않는 한 예외를 인정할 수 없게 돼 있다. 기준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반면 선진 외국에서는 법개정 없이 행정조치만으로 예외조치가 가능하도록 규제시스템이 설정돼 있어 새로운 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규제기준이 획일적일 경우 공무원은 구체적이고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그대로 처분을 하면 되기에 획일행정은 개발시대에 신속한 행정을 위해 순기능도 했다. 그리고 개발시대에는 국정운영이 행정주도로 됐고 국회가 통법부와 같았기에 법률 규정이 문제가 있다면 쉽게 신속하게 개정할 수 있어 법률 규정이 행정의 장애요인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야당이 반대하는 경우 국회에서 법률을 통과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과거에는 획일행정이 부패를 막는 순기능을 갖기도 했다. 이를테면, 음주단속 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0.1% 이상이면 면허를 취소해야 하고, 혈중알코올농도가 0.05% 이상이면 운전면허를 정지해야 하는 등 행정기준이 구체적이고 명확했기에 청탁이 통할 수 없는 순기능도 있었다. 그러나, 획일적 기준에 따른 부당한 행정으로 적지 않은 국민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박균성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법이론실무학회 회장
획일행정뿐만 아니라 소극행정, 보신행정, 형식행정, 밀실비공개행정 등 행정의 적폐는 차고 넘친다. 행정의 적폐를 청산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행정의 적폐 청산과 새로운 행정시스템의 정립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획일적인 법제도를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행정수요를 받아들일 수 있는 형평성 있는 법제도로 바꿔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제도를 집행하는 공무원의 전문성과 윤리성을 높여야 하는데 이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재 공무원의 전문성과 윤리의식은 높다고 할 수 없다. 순환보직제도로 공무원은 전문성을 쌓을 수가 없고, 공무원의 전문성을 기르는 교육프로그램도 없다.

공무원 신규채용 후나 새로운 보직으로 전보된 후 제대로 된 교육 없이 행정현장에 투입되는 것이 현실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는 매년 발생하는데 이 분야를 잘 아는 공무원은 매우 부족하다. 기술정책관료가 부족한 것도 우리 공무원조직의 큰 문제점 중 하나이다. 능력있는 공무원 없이는 AI도, 구제역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도 그 어떤 새로운 위험도 제대로 막을 수 없다. 부족한 전문지식은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아웃소싱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루가 시급한 위기상황에 즉시 대처하기 위해서는 공무원 자신이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장기적인 과제는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달성할 수도 있지만, 위급한 상황에서는 공무원이 즉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전문가를 찾고,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리의 행정구조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 나와도 제대로 실현되기 어려운 구조로 돼 있어서 행정개혁 없이는 어떠한 정부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정치개혁 못지않게 행정개혁이 중요한 이유이다. 국민의 여망인 국정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새 시대에 맞게 코페르니쿠스적 행정개혁이 행해져야 한다. 정치개혁과 함께 행정개혁이 국정개혁의 쌍두마차가 돼야 한다.

박균성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법이론실무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