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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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창의적 과학은 새로운 연구장비로부터

노벨 과학상, 최초 아이디어 관건 / 장비 연구서도 첫 제안 가장 중요 / 이제는 비싼 외제 장비 도입보다 / 아이디어 내는 학자 배출되기를
10월 초 발표된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새로운 연구장비 개발에 공헌한 학자에게 수여됐다. 물리학상은 라이고(LIGO)를 개발해 100년 전쯤 아인슈타인이 예측했던 중력파를 측정한 3명의 물리학자에게, 화학상은 생물체의 미세구조를 볼 수 있는 저온 전자현미경(cryo-EM) 개발에 공헌한 3명의 학자에게 돌아갔다.

역사적으로 연구장비의 개발은 과학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구의 획기적인 과학 발전을 이룬 16세기 이후 근대 과학혁명은 망원경이라는 연구장비의 개발이 크게 기여했다. 당시 먼 곳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갈릴레오는 원리를 공부해 렌즈를 직접 만들어 망원경을 제작했다. 그리고 달, 해, 목성 등을 관찰해 그 이전에 제안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를 사람들에게 전파시키며 과학혁명을 이끌었다. 현대과학을 이끌고 있는 가장 중요한 분야인 양자역학의 완성에도 연구장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자 내에 음전하(-)를 띠고 있는 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음극선실험장비와 원자 내부의 구성입자를 밝혀준 입자가속기와 안개상자 장비 등이 그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연구장비는 규모와 가격면에서 아주 작고 값싼 장비에서 웬만한 소규모 국가의 정부예산에 맞먹는 규모가 되는 거대 장비 등 다양한 것이 있다. 그러나 과학 발전에 기여도는 규모와 가격에 비례하지 않는다. 이번 물리학상의 LIGO는 1980년대 이후 미국 정부기관인 과학재단에서 제작하는 데 3000억원을 지원했고, 매년 운영비로 300억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참여 인원도 전 세계적으로 수천명이 협력연구를 수행하는 대규모 연구장비이다. 반면 1993년 노벨 화학상이 수여된 멀리스 박사의 중합효소연쇄반응(PCR) 장비는 소규모회사에서 개발한 장비로, 현재 유전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실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값싼 장비이지만 매우 중요한 연구장비이다.

최근 대규모 연구장비 개발과 그를 활용하는 연구에서 중요한 이슈가 하나 있다. 이러한 연구에는 많은 예산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과학자가 참여하게 된다. LIGO에 의한 중력파 측정의 경우도 수천명의 과학자가 참여해 성공시킨 연구이다. 중요한 역할을 한 학자가 1%라고 해도 수십명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자들도 수십명이 연구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러면 노벨상은 왜 3명의 물리학자에게 수여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전승준 고려대 교수·물리화학
노벨상은 노벨의 유언장에 의해 수여되고 있는데, 과학상의 경우 3명까지 수상해야 한다는 구절은 없다. 단지 평화상을 제외하고는 사람 개인에게 수여해야 하는데, 문학상은 항상 한 사람에게 수여했고, 과학상의 경우 3인 이내를 선정한다. 그런데 과학상의 경우 3인이 수상하더라도 그 기여도가 같지 않을 때가 있다. 이는 상금의 배분으로 알 수 있는데, 이번 LIGO의 세 학자도 상금의 배분이 동일하지 않다. 바이스 교수가 반을, 베리시와 킵손 교수가 각각 4분의 1을 갖도록 돼 있다. 그 이유는 업적의 중요도를 기반으로 나누는 것이다.

바이스 교수는 중력파의 세기가 너무 미약하기에 주변 노이즈로부터 감지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했기에 가장 큰 기여라고 판단한 것 같다. 베리시 교수는 LIGO 장치의 제작과 중력파 감지 연구의 총괄 책임자 역할을 담당했고, 킵손 교수는 애초 중력파 측정장치를 개발하기 위한 이론적 배경을 연구해 LIGO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한 학자로서 기여했다. 아마도 4분의 1 분배를 받은 학자들 정도의 기여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학자가 여러 명 더 있을 수 있다.

필요에 따라 노벨 과학상도 기관이나 단체에도 수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쨌든 과학자들은 최초의 아이디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장비 개발 연구에서도 새로운 장비의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외제의 비싼 장비 도입보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학자가 배출되기를 기원한다.

전승준 고려대 교수·물리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