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대검 중수부가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할 무렵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수사 가이드라인’을 받았다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발표가 나온 시점과 맞물려 ‘사실상 해외로 도피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1일 “이 전 부장이 지난 8월 (해외로) 출국한 기록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 전 부장이 해외로 나간 이후 다시 입국한 기록은 없어 사실상 해외도피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대검 중수부장까지 지낸 사람 행동으로는 아쉽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지난달 29일 이 전 부장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을 찾아가 보니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우편함에는 이 전 부장과 가족 앞으로 온 우편물이 쌓여 있고 마당에는 까마귀 사체가 방치돼 있었다. 이날 발행된 주간지 1부가 대문 아래 놓여 있어 누군가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이 전 부장이 집을 처분하려 한 정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전 부장의 평창동 자택 등기부등본을 열람한 결과 소유권에 변화가 없었고, 인근 부동산 관계자도 “현재 평창동에서 매물로 나온 단독주택은 한 채도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와 함께 최근까지 이 전 부장이 사용한 휴대전화로 연락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출국 여부를 묻는 기자의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메시지도 회신이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부장이 최근까지 형사팀장으로 근무해 온 법무법인 바른 관계자는 “지난 7월 이 전 부장이 ‘일신상의 사유’로 일을 그만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이 전 부장의 출국 여부 확인 요청에 대해선 “이 전 부장의 출국 여부는 알지 못하고 퇴직에 대해서도 법무법인 측에서 낼 공식 입장은 없다”고 답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관계자도 “특정 국민 개개인의 출국 여부는 법무부에서 알지 못하고, 설령 안다 하더라도 개인정보라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이 전 부장은 1990년대에 법무부 법무협력관으로 3년간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해 영어 실력이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이유로 미국에 장기간 체류하더라도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검찰은 이명박정부 시절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를 조장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 여부를 검토 중이다.
국정원 개혁위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의 한 간부가 이 전 부장에게 “고가 시계 수수 건 등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므로 언론에 흘려 적당히 망신 주는 선에서 활용하시고 수사는 불구속으로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후 2009년 4월 KBS가 논두렁 시계를 다룬 기사를 단독보도 형식으로 내보냈다. 보도 취지는 ‘검찰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수사하던 중 2006년 8월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맞아 명품시계 2점을 선물했다는 단서를 잡고 수사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이후 SBS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해당 시계가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한 권양숙 여사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해당 보도 열흘 뒤 투신해 서거했다.
이 전 부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조사에 협조해 달라”고 요구하는 국정원 조사관에게 “지금 밝히면 다칠 사람들이 많다”며 자세한 언급을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