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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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 건강보험 '적정부담' 논의 본격화] 보험료율 인상·국고지원 확대 ‘양날의 검’… 보장성 강화 관건

건보 강화 ‘文 케어’ 재원 미흡 지적 / 韓보장률 OECD 평균比 20%P 적고 / 가계 의료비 비율은 두 배에 달해 / ‘적정 부담·적정 급여’ 전환 목소리 / 보험료율 인상만으론 지속 힘들어 / 선진국선 최대 절반이상 국고 지원 / “보험료 올려도 보장범위 커져 이익 / ‘내는 것보다 더 받는다’ 확신 줘야”
문재인정부는 현재 60% 초반에 머무르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임기 내에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도 급여화해 국민의료비 부담을 크게 덜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재원 대책이 미흡해 ‘한시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사회보험을 일찌감치 도입해 꽃을 피우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건보 보장성 강화를 위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독일에서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본인부담금이 거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부 응급상황이나 민간보험 가입자의 까다로운 요구 등을 제외하면 민원이 크게 발생하지 않지요.”

독일 베를린 샤리테병원의 고서린 수석의사(oberarzt)는 독일의 의료서비스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올해 독일의 건강보험료율은 14.3%(여기에 질병 조합별로 0∼1.3% 추가됨)로 우리나라(6.12%)의 두 배가 넘는다. 독일의 건보 보장률 또한 이미 80%를 넘어서는 등 우리나라의 63.2%보다 훨씬 높다. 독일에서는 건강보험이 미용·성형이나 치아 보철 등을 제외한 나머지 필수의료 대부분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개인부담이 많지만 돌려받는 편익이 훨씬 크기 때문에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가 높다.

◆수면 위로 떠오른 ‘적정부담’ 논의

문재인정부는 지난 8월 ‘모든 비급여의 급여화(예비급여 포함)’와 ‘보장률 70% 이상 달성’ 등을 골자로 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임기 내 30조6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임기인 2022년까지 5년에 국한된 것이어서 장기적으로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자 증가 등에 따른 대책의 지속가능성은 약해 보인다.

1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77년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의료자원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요양기관은 당시 6242곳에서 3만2693곳(2015년 기준)으로 5.2배, 병상은 5만1391개에서 66만8470개(2014년 기준)로 13배, 의료 인력은 14만4360명에서 46만3581명(2013년 기준)으로 8.9배가 각각 늘었다.

반면 보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OECD 회원국 평균 보장률은 80% 수준인 데 반해 한국은 10년째 6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경상의료비(전체 의료비 중 장비 투자를 제외한 비용) 중 공공지출 비율은 56.2%(2015년 기준)로 OECD 평균(72.7%)보다 한참 뒤처진다.

이로 인해 가계가 부담하는 의료비 비율은 36.8%(2014년 기준)로 멕시코(40.8%)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을 뿐만 아니라 OECD 평균(19.6%)의 두 배에 가깝다. 가구별로 매달 지출하는 건강보험료가 9만원인 데 반해 민간 의료보험료는 28만원에 달한다.

국민 소득수준이 제도 도입 당시에 비해 수십배 커진 만큼 건강보험료율 또한 점차 높여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건보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현행 ‘저부담-저급여’ 체계에서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로의 전환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보험료율 높은 선진국, 국고지원에 눈 돌려

건강보험을 비롯한 복지체계를 정비한 선진국들은 보험료율 인상만으로 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험료율 인상과 더불어 정부의 지원 또한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건보재정의 안정화를 위해 2003년 개혁법을 제정해 2004년부터 연방보조금을 투입했다. 2004년 첫해에는 10억유로(건강보험 재정수입의 0.7%)에서 2010년에는 157억유로(8.2%)까지 국고지원이 늘어난 뒤 5∼7% 범위를 유지하고 있다.

연방보건국의 슈테판 그륀더 건강정책재정담당관은 “지난해 건보재정에서 연방보조금의 비중은 약 7%였다”며 “현재는 보험료율 인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재정상황이 좋은 편이지만 인구고령화 등의 이유로 장기적으로 국고지원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정치권에서도 공통적인 인식”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건보재정의 절반 이상을 국고로 지원하는 프랑스의 보험료율은 명목상 13.85%(2014년 기준)이다. 이 가운데 근로자가 0.75%를, 사용자가 13.1%를 각각 부담해 근로자의 부담이 거의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건보재정을 위해 근로자에게서 추가로 일반사회보장분담금(CSG)을 5.29% 걷기 때문이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준조세 성격의 부분을 더해 실제 보험료율은 19.14%가 되는 셈이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프랑스 정부는 알코올소비세와 담배소비세, 의약품광고세, 에너지음료세, 청량음료세 등 다양한 목적세를 건보재정에 투입하고 있다.

일본은 직장조합의 경우 16.4%, 지역조합에 대해 32%를 각각 국고로 보조한다. 대만은 최근 10여년간 중앙정부가 건보재정의 25∼30%를 지원했다.


◆“내는 것보다 더 보장받는다는 확신 있어야”

‘보장성 강화’라는 산은 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건강보험료율 인상과 국고 지원 확대 모두 쉽지 않다. 국민적 합의와 인식전환 과정에서 재정 확대가 분명히 이득이 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륀더 담당관은 “독일에서는 여러 방식으로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하고 있다”며 “보통 80% 이상이 만족한다는 답변을 내놓는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이 올해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종합만족도는 71.4점이었다. 보장성이 독일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에 비하면 후한 점수다. 이는 낮은 보험료에 비해 많은 지원을 받는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만족도가 다소 높게 나오는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보장성 강화를 위해 보험료율을 높이더라도 종합적으로 계속 이득이라는 인식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최기춘 건보공단 보험정책연구실장은 “건보 보장성을 강화하면 비급여 항목과 민간 의료보험 부담이 줄면서 가계 의료비 부담이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등 직접적인 이익이 증가한다”며 “또 검진 및 예방적 진료에 대한 보장 확대로 건강권 보장이 제대로 되는 등 여러 측면의 편익이 국민이 부담하는 비용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