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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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미지 오리고 붙이고… 디지털 퍼즐로 완성한 ‘가상의 실재’

이미지 메이킹 사진작가 이중근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본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깊이와 밀도가 있을까? 유럽 성당과 앙코르와트 등 신전을 사진에 담아내고 있는 이중근(45) 작가의 작품은 그런 점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우리는 빛의 음영과 시점이라는 한계 속에서 대상을 파악하게 된다. 어쩌면 실체의 본질보다 허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시점과 시간을 두고 찍은 사진 이미지를 조합해 실체에 다가서는 사진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은 일상에서 보는 대상이란 관점에서 보면 허구일 수 있다. 본질(실체)과 허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해탈(자유)과 힐링이 된다. 예술은 사기라 했던 백남준 작가의 말을 되씹게 만든다.

웅장한 생트샤펠 스테인드글라스를 담은 작품
파리 생트샤펠(Sainte Chapelle Paris)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둘러싸인 예배당 내부 사진은 압권이다.

“빛이 스테인드글라스 사방을 전체적으로 비추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계절 다른 시간대에 가서 찍은 이미지를 조합해 360도 방향으로 빛이 들어오는 장면을 만들어 냈습니다. 현실에서는 없는 풍경이라 할 수 있지요.”

그는 파리와 런던에서의 장기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유럽 여러 곳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파리 시절 매일 산책하며 들르던 노트르담(Notre Dame de Paris)의 정문 파사드에 새겨져 있는 수많은 조각상들은 그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런던에서는 사람들과의 약속 장소로 자주 찾았던 생폴(St.Paul)이 있었다. 그에게 밀라노의 두오모(Duomo Milano)는 세상을 관망하는 전망대가 됐다. 로마의 트레비(Trevi)는 지친 영혼을 씻어주는 성수(聖水)와도 같았다.

“베를린 돔(Berliner dom)에서는 삶을 관조(觀照)하게 되었고, 파리 생트샤펠 스테인드글라스에선 삶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호수에 비친 앙코르와트를 연출한 작품
그는 특정 종교의 신자는 아니다. 다신론자 입장에서 다양한 종교적 장소와 건물이 표상하는 시각적 이미지와 공간의 에너지에 관심이 많다.

“작업은 얼핏 보면 마치 한 컷으로 촬영한 건축물 사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디지털 조각들을 장기간의 컴퓨터 작업에서 세밀하게 건축적으로 조합한 노동 집약적인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사진 이미지를 재료 삼아 하는 즐거운 놀이와도 같이 디지털상에서 오리고·붙이고·합성하고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을 합니다.”

파편화된 디지털 조각들은 전체로의 구현을 위해 대상의 피부가 된다. 이미지 패치워크 작업이다.

“다양한 위치와 시간차를 두고 촬영한 사진들을 하나의 매끄럽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실재와 가상이 중첩된 느낌이지요. 실존하는 대상이지만 육안으로 그렇게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체를 담은 카메라의 눈으로도 그렇게 보일 수 없는, 그러한 대상을 가시화시키는 ‘가상의 실재’라고 표현할 수 있는 신전 이미지들입니다.”

그는 사진 속에 안견의 몽유도원도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기억의 퍼즐 조각들을 삽입시키고 있다. 앙코르와트 신전에서 지내는 원숭이, 눈 내리는 러시아 바실리 성당 앞에 누군가가 만들었던 눈사람, 아름답고 웅장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둘러싸인 생트샤펠 예배당 제단 속 천사, 하늘 높이 솟아있는 쾰른 대성당의 첨탑 속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을 거니는 사람, 기나긴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앞의 순례자 등이다. 두오모 사진엔 영화 ‘열정과 냉정 사이’ 주인공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

“제 작업은 실제 촬영한 사진들과 함께 내가 느낀 기억들을 더듬어가며 인터넷을 통해 얻은 사진들을 뒤섞어 재구성한 상상의 이미지들입니다. 사진이라기보다는 그림과도 같은 작업이지요. 그림 같으나 사진스러운 작업으로 보여지길 원합니다. 사진으로서의 사실적인 느낌에 회화적인 요소와 그래픽적인 구성이 혼합되고, 낮과 밤·여름과 겨울이 한 화면에 뒤섞여 시간과 공간이 모호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의도하고 있습니다.”

베를린돔 앞에 선 이중근 작가. 그는 “여행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연히 조우하게 되는 사람·장소·일·사물 등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그의 개별 작품 곳곳에는 작가의 인물 이미지도 있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이 화면 공간 속을 부유한다. 어떤 장소나 대상과의 우연한 조우가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자 성찰(사색)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의도된 것이다.

“앞으로 새롭게 계획 중인 작업은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역사적인 종교 건축물을 소재로 한 신전 시리즈의 진행과 함께 우주와 별자리에 대한 시리즈를 구상 중입니다. 그는 뉴질랜드 여행 중에 우연히 마주한 수없이 많은 별들이 보이는 밤하늘의 모습에 생애 최고의 감동을 받았다. 요즘 그는 경기도 광주 산속 작업실에서 밤하늘 별들을 자주 바라보고 있다.

“제가 살고 있는 우주에서 우연히 접하게 될지 모르는 새로운 만남을 시각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개인전이 30일까지 아트파크에서 열린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