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의 주부 이모(45·여)씨는 16일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생존배낭’을 주문했다. 15일 일어난 포항 지진과 그 여진을 느낀 뒤 불안감에 밤새 잠을 잘 못이뤘기 때문. 생존 배낭은 재난 후 최소 72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준비해두는 안전 장치로, 생수와 전투식량, 손전등, 나침반, 라디오, 호루라기, 다용도칼, 담요, 우의, 수건, 보온모자, 마스크, 비상의약품, 라이터, 야광봉 등 30여개의 물품이 담겨있다. 가격은 4만∼5만원대에서 30만원 이상까지 다양하다. 이씨는 “지난해 경주지진 때만 하더라도 생존배낭을 챙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별일 있겠나. 참 유난이네’ 싶었는데, 어제 포항 지진을 몸소 느끼면서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생존 배낭을 실제로 쓸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할 수 있다면 준비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포항에서 국내 지진 관측 이래 두 번째로 큰 5.4 규모의 강진이 발생한 15일과 이튿날인 16일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생존배낭과 안전모 등을 비롯한 재난대비 안전용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G마켓에 따르면 15일 보안면·안전모 매출은 전날 대비 187% 증가했다. 옥션에서도 안전모 매출이 전일 대비 93% 증가했다. 11번가에 따르면 지진이 발생한 15일 ‘지진대비’ 관련 검색이 지난 한 달 평균에 비해 86배나 증가했고, 생존배낭 검색도 5배 늘어났다고 밝혔다. 11번가에서는 15일에만 생존배낭 매출이 지난 한 달 일평균과 비교해 289% 급증했다고 밝혔다. 휴대용 라디오는 같은 기간 13% 증가했고, 생수와 즉석밥·라면 등은 각각 15%, 13%, 26% 늘어났다. 손전등 매출도 38% 증가했다. 소셜커머스에서도 비상용 텐트나 응급 담요, 손전등 상품을 모은 ‘재난대비 비상용품 모음전’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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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제작·판매하는 지진방재모자경북 포항 지진 후 지진방재모자를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캡처=연합뉴스 |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포항 지진을 느낀 뒤 두꺼운 점퍼와 생존 배낭 등을 비롯한 각종 구호용품을 챙겼다는 인증사진이 여럿 올라와 있다. ‘생존배낭’이나 ‘지진대비’, ‘포항지진’을 검색하면 수백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인천의 서모(28)씨도 “주변 지인들의 생존배낭 구입 인증 사진을 SNS로 많이 보면서 우선 다용도칼(맥가이버칼)을 구입했다. 생존 배낭도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진 여파로 수능이 1주일 뒤인 23일로 연기되자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수능 D-7 특강'이 성행하고 있다. 주요 대형학원들은 대체로 기존 수강생에 한해 무료로 특강을 준비했다. 다만 일부 학원은 전용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성적을 팍팍 올리는 7일의 기적’, ‘지구가 준 마지막 1주일의 선물’, ‘1주일을 불사르는 파이널 특강’ 등의 자극적인 문구로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며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어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수강료는 대체적으로 수학과목 4회(회당 2시간~2시간30분)에 30~35만원 선에서 이뤄지고 있다. 일부 학원에서는 하루 특강비를 7∼10만원으로 책정해 일주일을 다 수강하면 최대 70만원까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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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으로 인해 수능이 일주일 연기된 가운데 16일 오전 서울 중구 종로학원 옥상에서 수험생들이 버려진 자습서 등을 줍고 있다. 남정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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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연기된 16일 대전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 D-7일 안내 쪽지가 붙어 있다. |
수험생을 둔 부모들은 학원의 ‘상술’을 알면서도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특강을 신청하는 모양새다. 재수생 수험생을 둔 박모(47·여)씨는 “딸 아이는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겠다고 한다. 다른 수험생들은 고액 특강을 듣는데 혹여나 경쟁에서 뒤쳐질까 싶어 다니던 학원의 특강을 등록했다”고 말했다. 강남 대치동의 한 학원 관계자는 “수능 연기 이후 특강을 희망하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면서 “갑작스런 수능 연기로 학원도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긴급하게 커리큘럼을 짜고 특강을 개설 중이다”라고 말했다.
남정훈·김범수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