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영을 위한 준비물과 식량을 실은 두 대의 보트는 탐사단원을 싣고 쾌속정답게 레나강 물살을 가르며 북으로 북으로 달려갔다. 피부에 닿는 따스한 여름 햇볕과 물 위를 가르며 내달리는 보트에서 흩뿌려지는 물방울 입자는 우리 탐사단원들을 자극하고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마존 밀림과는 또 다른 느낌의 시베리아 속살을 본다는 기대는 우리의 뇌세포를 풍선처럼 부풀게 했다. 강변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타이가의 숲과 언덕, 전인미답의 시베리아 대평원은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광활했다.
탄광 개발로 1926년에 형성된 산가르 마을에 도착하자 탐사단을 환영하는 산가르 주민들. |
야쿠츠크에서 출발하여 레나강을 따라 북쪽으로 330㎞쯤 내려가다가 보면 우측 강변에 탄광 개발로 1926년에 형성된 산가르 마을이 있다. 탐사단이 탄 보트는 산가르 마을에 정박하려고 속도를 늦췄다. 레나강이 범람해도 마을이 침수되지 않을 정도로 약 40~50m 높이의 언덕 위에 위치한 산가르 마을은 멀리서 볼 때 언덕 위로 별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느낌의 예쁘고 조그마한 마을이다.
산가르 마을의 명칭은 에벤키어의 ‘구멍’에서 유래했다. 이곳은 사하공화국을 구성하는 코뱌이스크군에서 가장 많은 주민이 거주하는 행정 중심지이다. 코뱌이스크군에는 1만250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면적은 남한과 비슷한 10만㎢이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는 에벤인들과 에벤키인, 야쿠트인들이 거주했다.
산가르의 석탄 산업은 이 마을 주변 바아틸 언덕에 대규모 석탄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후인 1928년에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후 (주)야쿠트 석탄이 채굴하는 산가르 탄광은 매년 1300만t의 석탄을 생산했다. 1959년 이후 이 부근에서 채굴되는 석탄과 가스 산업 덕분에 촌락이 급팽창했다. 소련 시기였던 1980년대에 1만2500명이 거주하던 산가르 마을은 1997년 석탄 채산성이 사라지자 급격히 쇠락 길에 접어들어 2004년에는 4500명, 현재는 3800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코뱌이스크군은 산가르 석탄 산업을 재가동하여 쇠락해 가는 군과 산가르 마을을 부활시키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왼쪽부터 에벤키어로 반주되는 음악에 맞춰 이국적인 춤을 선사한 에벤키 복장의 소녀. 말총으로 만든 총채인 ‘데이비르’를 들고 토이우크 야쿠트 전통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산가르 마을의 여인. 전통 음식을 든 채 탐사단을 반갑게 맞이하는 러시아 여인. |
산가르 선착장에 배를 정박하자 마을 주민들과 행정기관에서 나온 관계자들이 우리 탐사단을 반갑게 맞이했다. 산가르 주민을 구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세 인종인 러시아인, 야쿠트인, 에벤키인을 상징하는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여성 세 명이 쟁반에 음식을 준비하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러시아인들은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빵과 소금을 준비한다. 이 밖에 생선과 고기, 사하공화국의 대표 음료인 쿠무스도 준비했다. 몽골의 마유주와 비슷하게 말젖을 발효시킨 쿠무스는 사하공화국 원주민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이다. 우리나라의 막걸리와도 비슷한 맛이다. 3~5도 정도의 알코올로 발효된 상태여서 맛이 시큼했다. 쿠무스는 비타민과 함께 다른 영양소들이 많이 들어 있고 알코올 도수도 낮아 시베리아 북극권 원주민들이 애용하는 음료(?)라고 한다.
산가르 주민들은 우리 탐사단원들을 위해 민속의상 차림으로 민속 악기를 사용해 춤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공연을 준비했다. 민속 복장을 한 여성이 말총으로 만든 ‘데이비르’를 흔들면서 부르는 노래는 광활한 시베리아 대지의 신과 물의 신을 부르는 울림으로 들렸다. ‘데이비르’는 말총으로 만든 총채 형태로 야쿠트인들의 집집마다 벽에 걸려 있다. 그들은 이 말총 총채로 모기도 쫓고 시원한 바람도 일으키고 더 나아가서는 악운과 악령을 쫓기도 한다.
김선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 |
항상 그렇듯이 대단원의 막은 시베리아의 대표적인 집단 원무로 끝났다. ‘아수오하이’라고 하는 원무는 시베리아 민족에게서 보이는 전통적인 춤으로 한국의 강강수월래와 비슷하다. 한 명이 주도하는 노래를 부르고 모든 참가자가 손에 손을 잡거나 서로서로 팔짱을 끼고 원형으로 황소걸음처럼 느릿느릿하게 빙빙 돈다. 2012년 사하공화국 민족 여름축제인 ‘의쓰이아흐(Yhyakh)’에서는 1만5293명이 ‘아수오하이’ 원무를 추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산가르 주민들은 그들이 레나강에서 잡은 물고기들로 요리한 음식과 ‘하르타’라는 말의 대장 요리, ‘쿠스’라는 오리 요리들을 탐사단에게 제공했다. 팬케이크와 샐러드, 꿀에 섞은 스메타나(우유발효식품)를 야생 열매에 섞어 먹으라고 떠서 주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그 옛날 시골에 계시던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산가르 주민 중에는 나이가 많은 유럽계 외지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젊었을 때 유럽에서 이곳으로 강제 이주되어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 기간 중 어느 여름철 레닌그라드주에 거주하던 핀란드인과 발트해 연안 지역 주민 200여 명이 시베리아로 강제 추방되어 산가르에 정착했다. 그들은 법과 권리를 제한받았는데, 강제 이주당한 지 무려 49년이 지난 뒤 불법 추방으로부터 명예와 권리를 회복했다고 한다.
8월 초 시베리아의 찬란한 태양빛 아래 레나강 깊숙한 곳에서 어쩌면 우리는 역사 이전의 시기부터 유구한 생명력을 이어온 이곳 사람들의 전설을 접했을지 모른다. 유라시아 시대 신북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가 시베리아와 유라시아를 경제적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시베리아 내륙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고 교감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김선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