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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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보기관 수장 잔혹사

김재규, 박정희 시해… ‘형장의 이슬’로 / 임동원·신건, 불법 도청 혐의로 구속 / 권영해 ‘북풍 공작’ 기획 쇠고랑 / 軍 장성 전유물→전직 검사 중용
중앙정보부(중정),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그리고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정보기관 역사는 56년에 이른다. 정보기관 수장을 지낸 인물들 중엔 전두환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 권력자도 적지 않았다. 퇴직 후 대통령을 배신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도,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을 살해한 이도 있었다. 역대 정보기관 수장들의 잔혹사 속에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재준, 이병호, 이병기 전 원장
◆역대 정보기관 수장들 잔혹사

정보기관 수장들 중 말로가 가장 참혹했던 이로 김형욱 전 중정부장이 꼽힌다. 그는 박정희정부 초반 6년3개월간 역대 최장수 중정부장을 지냈다.

퇴임 후 그는 정권의 ‘치부’를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여긴 박 대통령 측에 의해 끊임없이 견제와 감시를 받았다. 유신 선포 후 김 전 부장은 미국에 망명해 의회 등에서 박 대통령한테 불리한 증언을 쏟아냈다. 그는 1979년 미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옮긴 뒤 실종됐는데 박 대통령 지시를 받은 중정 요원들이 그를 납치해 살해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자신을 임명한 박 대통령을 1979년 10월26일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시해했다. 당시 그는 박 대통령의 신임을 놓고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과 다투는 처지였다. 1980년 5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를 두고 ‘경호실장만 제거하려다 우발적으로 대통령까지 살해한 것’이란 분석과 ‘유신독재 종식을 위해 박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의사가 있었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전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집권 후 중정은 안기부로 바뀌었다. 전두환·노태우정권에서 안기부장을 지낸 인사들은 1995년 김영삼정부가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과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수사에 전격 착수하며 줄줄이 철창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이희성·유학성·장세동·안무혁·이현우 전 안기부장이 그들이다.

민주화 후에도 수난은 계속됐다. 김영삼정부의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김대중정부 들어 이른바 ‘북풍’ 등 정치공작을 기획한 혐의로 구속됐다.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문패를 바꿔 단 김대중정부의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은 노무현정부 들어 불법 도청 혐의가 불거져 구속됐다.

이명박정부 시절 4년1개월간 국정원장을 지내 역대 두 번째로 장수한 원세훈 전 원장은 박근혜정부 들어 온라인 댓글 등 정치공작 혐의가 드러나 구속됐다. 박근혜정부는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3명 전원이 문재인정부 들어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그중 2명이 구속됐다.

◆군인 전유물→전직 검사 중용

국정원의 전신에 해당하는 중정이 만들어진 것은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5월20일의 일이다. 자연히 초창기 중정은 정권 실세인 군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이후 11대 유학성 부장까지 약 30년 동안 전직 군인들이 중정부장 또는 안기부장 자리를 독식했다. 박정희정부 시절 검찰총장, 법무장관을 지낸 7대 신직수 중정부장도 군법무관 출신 법조인이란 점에서 법조인보다는 군인으로 분류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군 출신은 차츰 퇴장하고 전직 검사 등 법조인이 정보기관 수장에 기용되는 사례가 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임명한 배명인·서동권(검사 출신) 안기부장,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명한 신건(검사 출신) 국정원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고영구(변호사 출신)·김승규(검사 출신) 국정원장,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성호(검사 출신) 국정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보기관 수장에 전직 군인을 앉히는 예전 군사정권 시절 스타일로 되돌아갔다. 그가 임명한 국정원장 3명 중 2명(남재준·이병호)이 군 출신이고 나머지 1명(이병기)은 전직 외교관 출신이었다.

김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