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들이 매년 여름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집필했던 통나무집에서 숙영하였다. 타아스 투무스에는 탐사단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가까운 마을에서 수십명의 주민이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탐사단이 도착하자 제사장 복장을 한 주민이 우리를 맞이하는 의식인 불의 헌제를 진행하였다. 전통적인 야쿠트 의식의 일종으로 지난 일 년 무탈하게 생활한 것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일 년 어려움 없는 생활을 기원함과 동시에 먼 곳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불의 헌제는 불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의 영혼을 깨끗이 씻어내 다시 자연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종교의식이다. ‘알그스’라는 축복의 기도를 읊으면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주민들은 말젖을 발효한 ‘쿠무스’ 음료와 팬케이크를 손님에게 제공하였다.
살라마의 외형은 한국의 서낭당과 비슷하다. 살라마 노끈들이 형형색색 묶여 있는 지역이 신성불가침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의 소도와도 비슷하다. 오색의 매듭으로 지어진 말총 끈들이 둘러싼 지역은 신성과 금단의 지역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침범하거나 허물면 안 된다. 특히 악령으로부터 수호되는 신성한 의미의 살라마는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에 매년 2회 정도 의식이 거행된다. 타아스 투무스 인근 주민들은 살라마 의식을 통하여 우리 탐사단이 묵는 오두막 근처를 악령이 근접하지 못하는 신성한 지역으로 만들었다. 불의 헌제가 끝나고, 불의 신에게 음식 일부를 제물로 바치고 남은 음식을 주민들과 탐사단들이 배부르게 먹었다. 북극권 신과 합일된 우리는 레나강에서 잡은 물고기와 오리 그리고 말고기, 야생에서나 채집할 수 있는 야생 열매로 만들어진 잼 등과 함께 보드카와 쿠무스로 길고 긴 북극권의 밤에 빠져들어 갔다.
폐광으로 마을 주민이 뿔뿔이 흩어져 버려진 타아스 투무스의 마을에서 제사장 복장을 한 주민이 탐사단을 맞이하는 의식인 불의 헌제를 지냈다(오른쪽 사진). 탐사단원이 악령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살라마 의식에 따라 말총끈에 리본을 묶고 있다(맨 위 사진). |
야영하는 동안 바람이 세게 불어 보트가 출항할 수 없었다. 탐사단들은 레나강 탐사를 시작하기 전날 북동연방대학교에서 러시아 긴급재난구조청 직원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레나강에 풍랑이 일거나 보트가 조난 혹은 전복됐을 때를 대비한 교육이었다. 보트를 운영하는 선장은 레나강을 탐사하는 내내 하루에 두 번씩 GPS로 우리 위치를 재난청에 보고하게 돼 있었다. 스푸트니크와 연결되는 전화로 40개의 무인도에서 꼼짝 못하는 우리 상황을 보고하려고 애쓰는 선장의 모습을 보면서 러시아의 재난안전시스템의 우수성에 감사를 드렸다. 우리 보트와 마찬가지로 숙영지 맞은편에도 레나강을 운항하는 벌크선과 화물선들이 바람이 잦아질 때까지 정박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지간스크 마을 에벤키 주민들이 탐사대를 위해 공연을 준비했다. |
잠깐의 강변 산책을 마치고 에벤키족들의 집단 거주지인 지간스크로 향했다. 희미한 물안개가 낮게 가라앉은 레나강, 그 너머에 지간스크라는 표시가 보였다. 지간스크는 북위 66도 33분에 위치한 북극권 마을이다. 지간스크군은 한국보다 조금 큰 14만㎢로 레나강이 군의 중심을 남북으로 가르며 흘러간다. 동쪽에는 베르호얀스크산맥의 거대한 산들이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으며, 서쪽에는 야쿠티아 대평원이 놓여 있다. 군의 주도인 지간스크 마을은 북극여우 모피, 여우, 흑담비 등 수렵과 철갑상어, 연어, 시베리아산 송어, 붕어, 붕장어 같은 어획으로 살아간다. 지간스크라는 단어의 뜻은 에벤키어로 ‘강 하류에 사는 사람들’이다. 지간스크군 예산 대부분은 사하공화국으로부터 지원받아 충당한다.
김선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 |
현재 에벤키인들이 50% 이상 살고 있는 지간스크에는 먼 옛날 자신의 종교인 러시아정교를 버리고 무녀가 된 ‘아그라페나’라는 여성에 대한 전설이 있다. 18세기에 쓰인 설화집에 의하면 지간스크에 정착한 러시아인과 퉁구스계 민족들이 마법사이며 무서운 마녀인 아그라페나를 두려워하였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 무녀에 대한 시간·공간대가 뒤섞여 기록돼 있어 그 진실은 전설 속에 묻혀 있다고 한다. 이 무녀에 대한 전설은 아파나시 야코블레비치 우바로프스키 작가에 의해 재탄생됐다. 러시아 남성과 야쿠트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우바로프스키는 어릴 때부터 두 개의 문화 속에서 교육받았다. 19세기 중반 그의 작품 속에서 아그라페나가 살던 장소와 그 무녀에 대한 자세한 묘사로 전설이 되살아났다. 그녀의 사랑을 받는 자는 행복하고 그녀의 미움을 받는 자는 불행해지는 신기 있는 무녀 아그라페나의 그림자는 아직도 지간스크의 바위산 속 작은 집에 존재하고 있다.
지간스크에서 레나강을 따라 북쪽으로 90㎞ 올라가면 크스타티암이라는 에벤키 마을이 있다. 400여명이 사는 마을의 경제활동은 순록 사육과 사냥 그리고 어업이다. 젊은 남자들은 순록을 사육하러 눈 덮인 툰드라로 가고 없었고 마을에는 여성과 노약자,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크스타티암에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면 집안의 가장인 남자들이 순록 무리를 이끌고 돌아온다.
마을 주민들은 멀리서 온 이방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조그마한 마을이지만 인터넷이 있고 발전기가 전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마을에 태양광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정도 크기이면 마을 전체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크스타티암은 툰드라와 타이가의 접경지역에 놓여 있고, 짧은 여름 동안 식물과 나무들이 자라 키 작은 나무들이 서식하고 있다. 마을은 영구동토지대 위에 지어져 있어 모든 건물이 지면으로부터 40㎝ 떨어져 있다. 그 때문에 파일을 박고 주춧돌 위에 놓인 건물이 여름 한 철 지표면이 살짝 녹아도 단단하게 버티고 있다. 마을 언덕 중간에 있는 얼음 동굴에 마을 주민들과 같이 들어갔다. 이 동굴은 마을 주민 전체의 냉동고 역할을 하고 있다. 한여름인데 영구 동토층 밑을 판 동굴 벽은 얼어붙어 있었고 그 안에 그들의 주식인 순록고기가 쌓여 있었다.
우리 탐사단은 크스타티암 주민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극한의 시베리아 북극권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크스타티암 주민들에게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웃의 얼굴을 보았다. 겨울철 해가 뜨지 않으며, 영하 50도를 오르내리는 극한의 마을 크스타티암, 그곳에는 피부가 하얗고 우리와 비슷한 얼굴을 한 에벤키인들이 살고 있었다.
김선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