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출신의 송모(20·여)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선배들로부터 이런 요구를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사투리를 쓰는 게 귀엽다”느니 “계속 사투리로 말해라”라는 등의 말도 자주 들었다. 처음에 별 생각없이 선배들의 요구를 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쾌해졌다. ‘오빠야∼’라는 사투리를 ‘경상도 여성들의 애교’와 등치시켜 흥밋거리로 만들고 있는 선배들의 속내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송씨는 “사투리를 해보라고 할 때면 재롱을 부려보라는 요구를 받은 동물이 된 것 같아 불쾌하다”며 “사투리를 가지고 특정 이미지를 강요받는 것은 폭력적”이라고 꼬집었다.
대전이 고향인 이모(23)씨 역시 서울에 살면서 충청도 사투리를 해보라는 은근한 강요를 받곤 한다. 주로 말 끝에 ‘∼여유’를 붙이라는 거였다. 때로 지인들은 충청도 사투리를 흉내내면서 행동이 느릿느릿한 모습을 연출하거나 심지어 바보같은 이미지를 덧씌우기도 했다.
사투리에 투영된 편견과 호의를 가장한 폭력이 이처럼 질기다. 대인관계, 직장생활 등에서 사투리의 사용이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조사도 있다. 사투리가 한국어를 풍요롭게 하며, 보존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제주 4·3항쟁을 겪었던 제주도민들이 이념문제에 얽히기 싫어 의식적으로 제주 사투리를 피한 사례도 있다. 제주에 사는 김모(79) 할머니는 “제주말을 쓰면 빨갱이로 몰아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런 시간이 길어져 제주 사투리는 이제 ‘소멸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을 받는다.
경희대 조현용 한국어교육과 교수는 “사투리는 표준어를 잣대로 고쳐야 하는 말이 아니라 잘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