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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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레나강을 가다] 우리와 언어 닮은 에벤키족… 1000년 전 발해와 ‘연결고리’ 품다

〈8〉 북극권 소수민족 이야기
사하공화국의 수도 야쿠츠크시는 약 400년이 되는 도시로 러시아에서 인구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최근 15년 동안 약 10만 명이 증가하여 현재 35만 명에 이른다. 1992년에 자치공화국이 된 이후 러시아인의 비중은 40% 정도로 감소했지만, 야쿠트인은 50% 정도가 됐다. 나머지는 에벤, 에벤키와 같은 토착 원주민과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유입된 인구들이다.

사하공화국의 민족 중 원주민은 야쿠트, 에벤, 에벤키와 축치, 유카기르를 들 수 있다. 제일 먼저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은 축치와 유카기르이다. 이들은 아마도 석기시대부터 자리 잡았을 것이다. 에벤키, 에벤족이라 불리는 퉁구스족이 들어오면서 북쪽으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대부분 야쿠트인에 동화돼 언어와 문화를 잃어가고 있다. 이들의 언어는 고아시아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사하공화국 올료뇨크 지역 에벤키인들이 추운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레나강 위에서 순록축제를 즐기기 위하여 짐승털 가죽으로 만든 전통 복장을 입고 있다.에벤족이나 에벤키족은 순록 치는 것을 주업으로 하며 몇백 년을 살아왔다.
에벤키와 에벤족이 이 지역에 나타난 것은 발해가 멸망한 10세기로 추측된다. 므레예바, 마르푸살로바, 자하로바와 같은 에벤키족, 에벤족 학자들은 자신들이 발해를 구성했던 민족이었다고 주장한다. 2012년 사하공화국(야쿠티야) 남부 지역을 탐사할 때 레나강 지류인 차라강 상류 지역에 있는 ‘또꼬’라는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마을은 원래 에벤키족 마을이었다. 이 마을의 조그만 박물관에서 발해 시대의 유물인 해동통보 사진을 보았다. 이 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데 진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사진만 걸려 있었다.

에벤키와 에벤족은 퉁구스어족에 속한다. 오래전부터 한국인도 퉁구스어족에 속한다고 말해져 왔다. 퉁구스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 야쿠트인 학자 우시니츠키(2012)는 동호(東胡)라는 의미의 중국어 발음 tun-gu가 러시아어에 차용돼 퍼졌다고 설명한다. 이번 탐사는 북극항로 개척을 위한 기초조사와 레나강 수로의 가능성 연구가 주 목적이지만, 이런 언어적인 이유로 이 지역에 거주하는 퉁구스 후손들에 대한 언어와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에벤키인들은 곰을 숭상하고 곰의 털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에벤키나 에벤이 우리 한국인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들이 자신의 조상이었다고 하는 발해 영토의 북방 경계는 어디까지였을까. 에벤키나 에벤족의 생활 무대를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사하공화국의 남동부에 ‘알단’이라는 지역이 있다. 이 지역을 지나는 강 이름이 알단 강이다. 이 강에선 금이 많이 채취됐다. 대한제국 시절 많은 한국인 유민들이 금이 많이 난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알단이라는 지명은 에벤키 말에서 나왔다. 에벤키 말로 알단은 금을 가리킨다. 신라의 건국 설화에는 ‘알지’가 있다. 성이 금을 나타내는 ‘김’이다. 관련이 없을까.

에벤어나 에벤키어로 여자를 ‘아씨’라 한다. ‘돌’을 ‘졸’이라 한다. 에벤어나 에벤키어에서 ‘ㅈ’은 ‘ㄷ’이 구개음화된 것이다. ‘물’은 ‘무’이다. ‘옷’은 ‘오이’이다. 한국말에 설날에 입는 ‘때때옷’이 있다. 에벤어로는 이런 옷을 ‘떼띠’라 한다. ‘이빨’을 에벤어로 ‘잇’이라 한다. 동사에서 ‘다가가-다’를 에벤어로는 ‘다감-다이’라 한다. ‘가지-다’라는 동사는 ‘가-다이’이다. ‘잡-다’라는 동사는 에벤어로 ‘잡-데이’이다. 우리말의 ‘달다’는 에벤어로도 역시 ‘달다’이다. ‘위’라는 단어는 에벤말로 ‘워이’이다. 우리말의 보조사 ‘도’는 에벤어에서 ‘다’이다. 의문형 종결어미 ‘-까?’는 에벤어에서 ‘구’ 또는 ‘꾸’이다. 에벤어에서 동사는 ‘-다이’로 끝난다. 한국어에선 동사가 ‘-다’로 끝난다. 경상도 방언에선 ‘-데이’이다.

우리 민족을 가리킬 때 스스로를 ‘배달’이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혹자는 ‘박달나무’가 어원이라 하고, 혹자는 ‘밝은 달’이라고도 한다. 에벤어나 에벤키어에서 ‘배달’은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베이’는 사람을 가리키는 명사이다. ‘달’은 친족 등 특수 범주의 명사에 붙는 복수 어미이다. 그 옛날 한반도가 씨족 사회였던 시절 북쪽에서 말을 타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먼저 와 살던 사람들이 묻는다. “당신들은 누구요?” “배달이요.” 의미는 잊혀지고 소리만 남은 것은 아닐까. 지금도 일부 에벤족은 자신들을 ‘일칸 베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진짜 사람’ 또는 ‘어른’이라는 뜻을 가진다.

우리말로 ‘오랑캐’라고 하면 야만인을 뜻한다. 어원이 무엇일까. ‘순록치기’라는 뜻이다. 에벤족이나 에벤키족은 순록 치는 것을 주업으로 하며 몇백 년을 살아왔다. 순록은 퉁구스 말로 ‘오론’이다. ‘카이’는 우리말에서 사람을 가리키는 ‘-이’에 대응되는 접미사이다. 이 두 단어가 합쳐져 오랑캐라는 말이 되었다. 이 단어가 널리 퍼져 시베리아 일대의 부족들은 자기들을 ‘우랑카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용감한 무사’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민속공연 중인 에벤키 젊은이들
여기서 왜 야쿠트인은 40만인데 에벤키, 에벤, 축치, 유카기르는 다 합쳐도 10만이 되지 않는 것일까 의문을 갖게 된다. 이들의 산업과 정착 형태와 관련지어 이 의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축치나 유카기르는 제일 먼저 이 지역에 들어왔다. 그 다음이 에벤키와 에벤이다. 이들은 정착촌을 갖지 않았다. 순록을 따라다니는 유목민이기 때문이다. 순록은 ‘선’이라는 하얀 풀만 먹는다. 이것은 채집이 불가능하다. 산기슭 그늘에서 자라는 이끼류이다. 순록은 매우 순하지만, 먹는 것은 까다롭다. 선이라는 이끼 이외에는 먹지 않는다. 순록은 그 선을 다 먹지 않는다. 잎사귀 끝부분만 먹고 남겨 둔다. 그 선이 자라는 곳을 순록이 기억한다. 한 곳의 선을 다 먹으면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동과 정지의 선택은 순록 무리의 대장이 한다. 에벤이나 에벤키 목동은 순록을 따라다닐 뿐이다. 이것은 목동에게서 확인한 사실이다. 

반면에 야쿠트인의 조상은 철제 무기를 들고 말을 타고 바이칼 유역에서 이주한 튀르크 족의 일족이다. 이들은 소와 말을 기른다. 소와 말은 일정 지역에 머물며 그 지역의 풀을 먹고 산다. 자연히 야쿠트인은 마을을 형성하며 정착하게 되었다. 이주해 온 튀르크인은 원주민인 에벤이나 에벤키인들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혼혈을 이루게 되었다. 그 후손이 야쿠트인이다. 야쿠트인이 매우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민족성을 가진 것은 그런 연유가 아닌가 짐작된다. 러시아 사람들은 야쿠트인을 ‘시베리아의 유대인’이라고 한다. 야쿠트어는 튀르크어에 속하는 언어이다.

야쿠트라는 민족 명칭에 대한 어원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지만, 그중 에벤족이 비하해서 부르던 것을 러시아인이 듣고 러시아어 식으로 고쳐 부른 것이라는 설이 제일 신빙성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야쿠트인은 그런 연유에 대해 별 상관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는 자신들을 사하족이라 부른다. 이 명칭은 고대 튀르크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에벤이라는 명칭은 ‘내려오다’라는 동사 ‘에브-데이’에서 기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벤족이 순록을 몰고 산비탈을 오르내리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에벤키에서 ‘키’는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이다. 혁명 이전까지는 에벤키와 에벤을 통틀어 퉁구스라고 불렀다. 에벤족에 대해선 ‘바닷가 사람’이란 뜻으로 ‘라무’라고도 했다. 혁명 후 이 두 민족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제 ‘오랑캐’의 어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의 ‘오랑캐’는 우리가 문화적으로 중국화되면서 바뀐 것이 틀림없다. 발해가 멸망한 이후 만주 일대의 소수민족들, 여진, 거란, 선비 같은 민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한반도는 대륙과 단절되어 교류도 끊어졌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약탈을 일삼던 소수민족들, ‘오랑캐들’은 두렵고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그들의 일부는 북쪽으로 올라가 북시베리아의 주인이 되거나, 일부는 중국으로 들어가 요나라, 청나라를 세우고 중국화되어 민족적으로는 소멸하였다.

강덕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소장·교수
에벤과 에벤키인을 ‘혼이 자유로운 사람들’이라고 한다. 소련 시대에 집단농장화에 마지막까지 저항한 민족이 바로 에벤, 에벤키였다. 축치, 유카기르, 코략족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야쿠트인은 집단화에 제일 먼저 순응하고 러시아인의 대리인이 되어 지역의 지배자가 되었다. 19세기 중엽 집단화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던 시절 오이먀콘 지역을 근거로 한 에벤족은 반란을 일으켰다. 소위 ‘퉁구스의 난’이었다. 꽤 많은 에벤족과 순록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다. 아마도 사하공화국이 ‘야쿠티야’라는 이름을 가진 야쿠트인의 땅이 된 것은 이런 일련의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간스크에 도착하던 날 북동연방대학교 소속의 모터보트를 몰고 합류했던 노보기친 교수가 의미심장한 제안을 한다. 에벤키 마을인 지간스크에 묻혀 있는 발해 유적을 발굴해 볼 의사가 없느냐고. 아무리 가정이라 해도 발해의 영역이 정말 북위 67도까지 올라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강덕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소장·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