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단독] 선임 사흘만에 사임 이영학 사선 변호사 “흉악범이지만 필요 이상 부당대우 안돼”

“가족들 변호사 조력 부담스러워해… 범죄 이유 살펴야 재발 방지 가능”
딸의 친구인 여중생을 성추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일명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지난 11월 17일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비난 여론에 부담을 느껴 사임계를 제출한 건 아니다. 난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여중생 딸의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영학(35)을 ‘무료변론’하겠다고 나서 눈길을 끈 김윤호(39·사진) 변호사가 법원에 선임계를 제출한 지 사흘 만에 재판에서 손을 뗀 이유에 대해 11일 입을 열었다.

김 변호사는 “난 키가 163㎝밖에 안 되지만 어릴 때부터 잘 싸워왔다”며 자신이 ‘강단 있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재판을 끝까지 챙기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 그는 “이영학의 누나와 형이 사선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게 부담스럽다며 사임해달라고 부탁해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수사과정의 적법성’을 파악하고 싶었던 김 변호사로서도 ‘이영학 변호’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하루 꼬박 밤을 새우는 것도 모자라 이영학과 그의 공동피고인 A씨를 접견한 뒤에야 재판에 나섰다”고 회상했다.
11일 서울 서초동의 한 커피숍에서 김윤호 변호사가 이영학을 변호하겠다고 결심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어떤 계기로 이영학을 만나게 됐나.

“내가 맡은 다른 사건 의뢰인이 서울구치소에 있다. 하루는 그가 ‘제 방에 걱정이 많은 한 친구가 있는데 절 만나러 올 때 그 친구도 한 번 만나달라’고 부탁하더라. 알고 보니 그는 이영학의 공동피고인으로 알려진 A씨였다.

그는 원래 카센터 직원이었는데 정직하게 일하다 보니 이영학이 자신의 차를 모두 그에게 맡겼다. 이영학이 범행을 저지른 후 운전을 해 달라고 부탁해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A씨가 어느 순간부터 이영학의 범행 사실을 알았는지는 조사가 필요하다.”

A씨는 이영학의 도피를 돕고 서울 도봉구에 은신처를 마련해 준 혐의(범인도피)로 현재 구속기소된 상태다.

김 변호사는 “이영학을 만난 건 A씨의 일방적인 주장만 들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영학이 내게 매달리더라”면서 “내 이야기를 관심 있게 들어준 사람은 지금껏 없었다. 내 사건을 맡아달라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이영학의 변호를 결심하는데 고민이 많았을 텐데.

“하루 꼬박 새웠다. 그것도 모자라 이영학과 그의 공동피고인도 이틀에 걸쳐 만났다. 어머니께는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고 아버지와 친구 몇 명에게만 이야기했을 정도다. 지금은 다 알게 됐지만. (웃음) 아버지께선 ‘걔(이영학)는 똑똑해서 너도 속여먹을 수 있을 것 같더라’며 반대하셨고, 친구들도 “사건이 없어 배가 고픈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냐’고 걱정하더라.”

김 변호사는 막상 사건을 맡은 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만약 내가 진실을 알게 됐을 때 그걸 전부 공개하지 못하고 이영학의 이익만을 위한다면 국민과 재판부를 상대로 사기 쳤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인권에 대한 소신은 굽히지 않았다. 평생을 인권 변호사로 살다 간 고 조영래 변호사를 존경한다는 그는 “범죄사실만 놓고 보면 이영학이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그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린 어느 순간 잘못을 저질러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며 “그렇다고 필요 이상의 부당한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 그건 흉악범 이영학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하필 이 사건을 변호해야 했느냐는 지적도 있다.

“나는 살인 사건의 변호인이 된 적도, 강간 사건 피의자의 변호인이 된 적도 있다. (이 사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은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영학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만큼 김 변호사 또한 그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는 “이영학이 어떻게 선처받을 수 있겠나. 딸이 없는 부모도, 자식이 없는 사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만 경찰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서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영학은 마약을 몰래 복용한 것이 아니라 정신과에서 일반적으로 처방해주는 약을 오남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내가 투신 사망한 뒤 딸에게도 ‘이걸 먹으면 엄마가 환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약을 건넸다고 한다. 그 약을 경찰이 압수했는데 왜 알려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면서 “이를 공개하면 심신미약으로 감형될까봐 그런 게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이영학에 대한 ‘사형’ 집행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 사회는 경험을 통해 성숙해간다. 이영학이 악마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그런 입에도 담기 힘든 일을 저지르게 된 변천사가 있을 것이다. 강한 처벌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런 흉악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 또한 우리의 할 일이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