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 김모(24·여)씨는 최근 입맛을 잃었다. 기말고사 기간이라 공부에 치인 것도 있지만, 이번 하반기 대기업 공채에 실패하면서 최근 졸업을 미루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과거에 졸업을 미루는 선배들을 보면서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졸업하고 취업준비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입장이 되고 보니 다르더라. 졸업하게 되면 소속된 곳 없이 그야말로 ‘백수’인 상태에서 취업을 준비하게 되는 것 아닌가. 그것보다는 ‘대졸 예정자’ 신분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대기업들이 중요하게 보는 스펙 중 하나가 ‘졸업시점’이라고 하는 것도 영향을 줬다”라고 말했다.
최근 대학가가 2학기 기말고사 기간에 접어들면서 졸업이 가능한 ‘대졸 예정자’들이 졸업을 하느냐, 마느냐를 선택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취업에 성공한 이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내년 2월 학사모를 쓸 준비를 하며 기말고사에 임하는 반면, 취업에 실패한 이들은 졸업이냐, 졸업 유예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다.
최근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이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대학생 4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55%가 ‘졸업을 유예할 것’이라고 답했다. 전공별로는 인문계열의 경우 70.9%가 졸업을 미룰 것이라고 답해 가장 비율이 높았고 ▲경상계열 57.8% ▲사회과학계열 53.2% ▲이공계열 48.8% ▲예체능계열 47.8% 등의 순이었다.
졸업 유예 이유로는 '재학생 신분이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서'라는 응답이 62.9%(복수응답)로 가장 많았으며 ▲'자격증 등 부족한 스펙을 쌓기 위해'(33.9%) ▲인턴십 등을 통해 직무 경험을 쌓기 위해(23.1%) ▲소속이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18.6%) ▲진로 결정을 못해서(12.2%) 등이었다. 계획하고 있는 졸업유예 기간은 한 학기가 43.4%, 두 학기가 22.6%였으며, 취업할 때까지라는 응답도 32.1%에 달했다.
대학생들의 예상대로 채용을 담당하는 인사담당자들은 신입사원 선발 시 가장 중시하는 항목으로 최종학교 졸업시점을 응답했다. 한국직업능력평가원이 500대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에게 채용 시 중시하는 항목을 조사한 결과 ‘최종학교 졸업시점’이 100점 만점에 19.6점으로 가장 높았다. 졸업 평점(16.2점), 전공의 직무적합성(14.7점), 출신학교(14.5점)이 그 뒤를 이었다.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열심히 준비하는 부분인 어학(10.3점), 자격증(9.5점), 해외취업 및 어학연수(6.0점)는 생각보다 중요도가 떨어졌다.
졸업시점은 명문대에도 예외가 없다. 설령 명문대를 졸업했거나 학점이 아무리 우수해도 졸업한 지 3년이 지나면 취업 확률이 바닥권으로 떨어진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졸업 3년이 지난 취업 지원자가 서류전형을 통과할 확률은 10%에도 못 미쳤다. 똑같은 스펙이라 하더라도 졸업 예정자가 졸업 후 3년이 지난 구직자보다 서류전형을 통과할 확률은 무려 49배나 높았다.
예비 졸업생들과 취업준비생들은 이러한 채용 풍토에 불만이 높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졸업유예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예비 졸업생이지만, 졸업유예를 택했다는 이모(28)씨는 “부모님께 손을 벌려 어학 연수를 다녀오고 자격증이나 어학점수 등의 스펙을 쌓으면서 청춘을 바치는 게 지금의 대학생들이다. 형편이 여의치 않은 취준생들은 스펙 쌓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최종학교 졸업시점이 더 중요하다니 허탈하다”면서 “초과학기가 정규학기보다 등록금이 싸다고는 해도 100만원이 넘는다. 그 돈을 또 다시 부모님께 손벌려야 한다니 정말 송구할 따름이다. 반드시 좋은 곳에 취업해서 지금의 설움을 갚겠다”고 말했다. 취업에 실패했지만, 졸업을 유예하지 않겠다고 밝힌 조모(27)씨도 “안 그래도 흙수저들이 자기 힘만으로 졸업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같은데, 칼자루를 쥔 기업들이 이런 채용 풍토를 가지고 있으니 청년들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공무원 시험을 보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 7급 공무원을 준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