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F-15K 전투기 편대가 9월18일 강원 영월 필승사격장에서 MK82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공군 제공 |
우리 군도 저장강박증이 존재하다. 특히 2020년대 한반도 유사시 영공을 수호해야 하는 공군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 도입한 지 30여년이 지난 전투기들이 전체 전력의 3분의 1에 달하고, 최신 전투기로 분류되는 기종들은 잦은 고장에 시달린다. 체계적인 운용전략 없이 도입된 정밀유도무기들도 상당수가 노후화된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공군은 내년부터 F-35A 스텔스전투기와 공중급유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UAV)를 순차적으로 도입한다. 공군이 무엇을 버릴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를 고민하는 대신 ‘숫자 채우기’에만 골몰하는 동안 공군의 전력 공백 위기는 커지고 있다.
◆전투부대인가 전쟁기념관인가
공군의 전력공백을 초래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전투기와 정밀유도무기의 노후화다.
단거리 공대공미사일 사이드와인더(AIM-9)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공군이 주로 운용중인 버전은 L형과 M형이다. L형은 1970년대 말 생산이 시작돼 1982년 포클랜드 분쟁에서 쓰인 무기다. L형을 개량한 M형은 1982년 미군에 처음 인도되어 1990년대 중반까지 성능개량이 이뤄졌다. 공군은 1980년대 중반 F-16을 도입하면서 사이드와인더 L, M형을 함께 확보해 현재 600여발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F-16 일부는 성능개량이 완료됐고 나머지 기체도 순차적으로 개량사업이 진행중이지만 최소 수년 동안은 북한 공군 전투기를 상대할 때만 가치가 있는 노후 미사일을 사용해야 한다.
공군 F-4 전투기가 훈련을 위해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공군 제공 |
전투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490여대의 전투기 중 절반 가까이인 200여대가 도입된 지 30여년이 지난 F-4E, F-5E/F다. 다른 나라처럼 대대적인 성능개량 없이 한국형 GPS 유도폭탄(KGGB) 등 일부 무장이 추가된 수준에서 수명연장만 거듭하고 있다. 그 결과 F-4는 2020년대 중반, F-5E/F는 2030년까지 운영할 예정이지만 미래전에서 요구되는 공격능력을 제공하지 못한 채 공군 규모 유지 역할만 하는 실정이다. 이달 초 실시된 한미 연합 공군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에 F-4, F-5E/F 대신 FA-50 공격기가 참가한 것도 현대전에 걸맞는 능력을 발휘하는데 제약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공군의 실질적 주력인 F-15K와 KF-16 전투기도 잦은 결함으로 임무수행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이 지난 10월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 당시 공군본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2017년 6월 F-15K와 KF-16에서 수리부속 부족으로 인한 비행불능을 의미하는 지노스(G-NORS)와 비행은 가능하지만 특수임무수행이 불가능한 에프노스(F-NORS)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F-15K는 지노스와 에프노스가 각각 257건과 72건이 발생했으며 KF-16은 314건과 951건을 기록했다. 이같은 현상은 단종된 수리부속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임무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되면 전투기를 동원할 수 없는 경우도 증가해 공중전력 공백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측면에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공군 F-15K 전투기가 서해상에서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하고 있다. 공군 제공 |
◆ 군 규모 유지만 챙겨…내실은 뒷전
현재 공군은 스텔스 전투기 F-35A와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A330 MRTT 공중급유기 등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도입될 첨단 전력을 운용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글로벌호크 도입에 맞춰 이를 운용할 항공정보단을 창설하고, F-35A를 조종하고 정비할 인력을 미국 현지에 파견해 노하우를 익히고 있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강한 법. 대북 무력시위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무기들이지만 도입 시기가 겹치면서 한꺼번에 많은 인력과 예산이 소요되는 점은 공군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인력과 예산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공군 무기 사업들이 특정 시기에 집중돼 앞으로 4~5년은 공군의 새로운 전력증강 사업 착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군 FA-50 경공격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공군 제공 |
최신 전자장비를 탑재하고 있으나 시대에 뒤떨어진 운영개념으로 공격능력이 제한되는 FA-50 공격기도 처음 개발된 이후 성능 향상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 내륙 지역 공격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FA-50이 장착할 수 있는 KGGB와 매버릭 공대지 미사일은 사거리가 짧아 북한군 대공포화에 노출된 채 폭격작전에 나서야 한다. 작전반경이 200~400㎞에 불과한 점도 개선해야 할 과제다. 이를 위해 독일 타우러스시스템즈가 개발중인 타우러스(TAURUS) 미사일의 단축형(사거리 400㎞)을 탑재해 장거리 공격능력을 향상시키는 등의 성능개량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 공군 F-35A 전투기 조종사가 애리조나주 루크 공군기지에서 이륙준비를 마치고 비행에 앞서 조종석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록히드마틴 제공 |
현재 공군의 상황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옛말과 다르지 않다. 눈에 보이는 효과에만 급급해 첨단 항공기를 잇달아 도입하면서도 기존에 운용하던 항공기들은 잦은 결함에 시달리면서 ‘뜨고 내리기’ 이상의 임무 수행에는 제약을 받고 있는 현실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항공기에 탑재할 정밀유도무기도 노후하거나 전장환경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조직 규모 유지를 위해 노후 무기를 계속 사용하면서도 첨단 무기를 들여와 운영유지비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기존 전력을 향상시켜 적은 비용으로도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체계적인 전력증강 전략을 수립하지 않으면 2020~2030년 한국 공군에서 주야간을 가리지 않고 제대로 작전을 할 수 있는 전투기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공군의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