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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세금, 걷는 것 만큼 쓰는 게 중요… 예산전문가 많아져야”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 1998년부터 예산 분야 ‘한 우물’ / ‘밑빠진독상’ 전개… 혈세 낭비 막아 / 아동수당 지급 시기 미룬 합의 / 정치·선거만 고려 ‘악심성 퍼내기’ / 국회 2018년 예산안 밀실논의 문제 / 견제 부족해 근거 없는 편성 많아
“아동수당과 기초연금 인상분 지급 시기를 지방선거 이후로 늦춘 것은 정치와 선거만 고려해서 제도를 뒤틀어버린 사례입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는 지난 7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동수당 지급 대상에서 소득상위 10%를 제외하고 지급 시기를 기초연금과 함께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미룬 여야의 내년도 예산안 합의를 ‘악심성 퍼내기’라고 혹평했다. “여야를 불문하고 꼭 필요한 복지 예산인 경우에 애초 편성한 예산보다 더 얹어서 사후 편성을 하는 게 기본이었다. 그걸 ‘선심성 퍼주기’ 예산이라고 비판했던 것인데 이번엔 ‘악심성 퍼내기’ 예산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야당이 아동수당을 아예 반대한 것도 아니다. 기간을 늦추고 소득상위 10%를 못 받게 했다”며 “상위 10%가 아니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림잡아 250만명이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최소 500∼1000명 공무원을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이 7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연구소 사무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회 예산안 심사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정 소장은 자타공인 예산 전문가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한파가 불어닥친 1998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예산감시부장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20년 동안 예산 분야를 파고들었다. 2000년부터 36개월 동안 매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최악의 예산 배정과 예산낭비 사례를 선정해 해당기관에 ‘밑빠진독상’을 주는 시민운동을 기획했다. 정 소장은 “밑빠진독상이 언론에 보도가 되고, 감사원이 감사를 시작하고, 정부가 예산을 삭감했다. 36번의 밑빠진독상을 통해 16번 사업을 막고 1조4000억원 예산을 줄였다”고 말했다. 정 소장의 활동은 당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시민운동 성공사례로 실리기도 했다.

정 소장은 이후 국회사무처 사무관과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서울시 재정계획심의위원회 위원, 국회 예산정책처 자문위원, 서울시 결산검사위원 등 우리나라에서 예산을 다루는 곳을 두루 거쳤다. 그는 “우리나라 2만명이 넘는 회계사, 세무사가 있다. 행정학자, 경제학자가 각각 3000여명이 있는데 예산전문가는 없다”며 “다들 세금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세금을 걷는 것에는 신경을 쓰는데 쓰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예산’을 고발하고 최근 ‘최순실과 예산 도둑들’이라는 책도 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기간 3년 동안 1조4000억원가량의 ‘최순실 예산’이 편성됐다는 것이 정 소장의 주장이다. 정 소장은 “우리나라 8000여개 사업에 대한 예산 설명서가 10만 페이지에 달한다. 매년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정리하고 흐름을 보는 중에 유독 ‘VIP’라는 단어의 출연 빈도가 높았다. VIP예산을 정리하고 있는데 국정농단 관련 기사가 나오더라”고 말했다.

지난 6일의 국회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대해서는 혹평을 했다. 정 소장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소위에서 예산 삭감과 증액을 논의했다. 소소위조차도 국회법에 근거가 없는데 이번 예산심사의 경우 소소위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않은 예산이 편성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논의에 참여하면서 견제가 작동하는 것인데 소수만 밀실에서 논의를 하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예결위 예산심사 개선 방향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예결위 상임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그럴 경우 예결위가 하나의 상원격이 될 것”이라며 “모든 국회의원이 예결위를 하려고 들면서 상임위가 무력화되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예결위는 ‘톱다운’을 하는 곳이 돼야 한다. 전체적 방향성 측면에서 어느 방향을 줄이고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각 부처는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예산을 늘리고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결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정 소장은 “400조원이 넘는 한 해 예산에서 신규 예산은 전체의 1%밖에 안 된다. 99%가 하던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결산이라고 하면 이미 써버린 예산인데 어떻게 할 거냐고 덮어버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는 예산을 썼지만 내년에 그 사업은 계속된다. 결산에서 문제가 지적된 사업들을 내년 예산 편성에서 반영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더 많은 예산전문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산에 대해 모르면 한 해 예산의 0.001%도 채 안 되는 10억원, 100억원에만 분노하게 된다”며 “예산 감시활동을 통해 예산 편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