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오(60)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은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강조했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인 주 관장은 지난달 임기 2년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당시 앞장서 맞선 학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주 관장의 취임을 두고 ‘문재인정부의 문화계 코드인사’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이에 주 관장은 “역사는 모든 국민이 만장일치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박물관은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수렴하고 각자가 판단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곳일 뿐이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박물관은 누구나 체험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그런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에서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 지금 국민들 중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탄생과 그간의 운영 과정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박물관에 와서 이루고 싶은 것 중 하나는 그런 인식들을 바꾸는 것이다. 박물관의 관장이자 학자로서 역사가 더 이상 정치나 이념의 갈등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박물관이 균형 있는 역사에 바탕을 두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소시키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건국일 논란, 역사 교과서 등의 정치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박물관이 다루는 ‘근현대사’가 논쟁의 시대적 무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탄생 자체가 건국일 논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역사적 사실이나 역사적 전시도 논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라는 것이 모든 국민이 만장일치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각자가 다양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역사는 역사학계의 중론과 통설이 중요하다. 박물관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색을 모두 반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곳이 국립박물관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른 의견이 있다면 배제하기보다 함께 의논하고, 그래서 박물관을 찾은 분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물관이 어떤 역사관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을 찾는 분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형성해 나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저 같은 경우 국정교과서 추진 당시 제1선에서 맞선 사람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제가 관장이 되면 또 다른 편향성을 가지고 전시나 운영을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들이 있다. 역사 교과서를 집필해 왔지만, 논란이 되는 현대사를 직접 쓰지 않았다. 다만 대표 집필자로서 논란에 대한 책임을 졌을 뿐이다.
스스로 정치에 개입하거나, 정당에 가입해서 활동해본 적이 없다. 국정교과서 추진을 반대하기 위해 활동했지만, 그것을 이유로 코드인사로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박물관 관장을 맡은 뒤로 어느 정부부처나 기관에서 어떤 식으로 운영해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도 없다. 전적으로 저에게 맡겨졌고, 제가 자율적으로 해야 하는 부분이다. 어떤 문제에서 첨예하게 대립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가급적 균형 있게 보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역사 교과서나 박물관 운영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제가 집필한 역사 교과서 가운데 검정에서 떨어진 교과서가 없다. 교과서가 검정에서 통과했다는 것은 균형성을 갖췄다는 의미라고 본다.”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강조하는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 그는 “역사가 국민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분열의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며 “박물관은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수렴하고 각자가 판단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시라고 본다.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흥미를 끌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전시는 상당히 통사적이다. 세 개 층으로 이뤄진 전시실을 모두 둘러봐야만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전시가 지루하고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앞으로는 통사적인 전시실을 줄이고, 주제별로 전시실을 꾸며나갈 계획이다. 전시실의 주제는 역사적인 것이나 생활사, 여성사 등 폭넓게 구상 중이다. 특히 박물관이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만큼 청소년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갈 생각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에 익숙하다. 그들에게 기존의 아날로그적인 전시는 흥미를 끌기 어렵다. 박물관에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전시시설을 도입해 역사를 체험하고 생각하게끔 만들 계획이다.”
“부임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5개 역사 관련 학회를 초대해 박물관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오신 분들의 90%가 박물관을 처음 방문한 분들이었다. 역사학계의 연구자들조차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동안 박물관이 어떤 정치적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곳으로 인식되면서 국민들과 학계로부터 외면받은 측면이 있다. 그런 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박물관을 찾아와서 문제점을 지적해주시고 함께 고쳐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더 이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국립박물관으로서 외면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가 오기 전부터 준비되어 온 전시다. 다만 최종적인 단계에 참여했다. 이번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관람객이 보기만 하는 전시를 떠나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미 전시를 시작했지만, 청소년들이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 중이다. 박물관이 청소년들에게 즐겁고 역동적인 공간이 되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관장이 모든 것에 개입하고 결정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실무자에게 모두 떠넘기는 것 역시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실무자의 의견을 존중하며, 큰 틀에서의 운영 방향을 함께 정해갈 생각이다.”
“내년에 4·3사건에 관한 특별전을 한다. 이 전시도 제가 부임하기 전부터 4·3사건 70주년을 기념해 준비해온 전시다. 제가 제주도에서 안식년을 보낸 당시 4·3사건에 대해 굉장히 많은 것들을 접했다. 그때 느낀 것은 4·3사건이 제주 사람만의 아픔이 아니라는 것이다. 4·3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큰 아픔이다. 이것이 충분히 인식되고 조명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4·3사건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있다. 어떤 시각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이번 전시에서 그런 다양한 시각을 최대한 담을 생각이다.”
“대사관 부지를 활용하는 것은 박물관에서도 희망하는 부분이다. 지금 관장실에도 대사관 부지를 활용하는 박물관 조감도가 걸려 있다. 현재 박물관이 사용하는 건물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세종시로 이전하기 전까지 사용하던 건물로, 내부 공간이 사무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후 박물관이 들어오면서 사무공간을 리모델링했지만, 전시를 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 여느 박물관처럼 공연을 할 수 있는 소극장이나 교육을 위한 공간 등을 조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사관 부지를 활용한다면, 현재 박물관에서 구상 중인 전시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해진 바가 없다. 그저 박물관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대담=류영현 문화부장
정리=권구성 기자 ks@segye.com
●1957(서울) ●연세대 사학과 졸업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민주사회를위한역사교육위원회 위원장 ●전국문화콘텐츠학과협의회 회장 ●제2기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근현대사분과 간사 ●한국사교과서집필자협의회 공동대표 ●제주4·3사건 70주년기념사업범국민위 상임공동대표 ●K―Culture 선도 한국역사유산콘텐츠 창의인재양성사업단 단장 ●K―Culture 창의콘텐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