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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두쿠르스(왼쪽), 윤성빈 |
‘황금 개띠의 해’인 무술년을 맞아 기량이 급상승 중인 ‘개띠’ 윤성빈은 영락없이 평창올림픽을 위해 태어난 선수다. 올 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1~6차 월드컵에서 무려 4차례나 우승하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아깝게 정상을 놓친 1, 5차 대회서도 모두 은메달을 목에 걸며 전 경기에서 시상대에 올랐다. 특히 지난 5일에는 IBSF 공식 인증 16개 경기장 가운데 코스 난도가 가장 높은 독일 알텐베르크 슬라이딩센터에서 6차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면서 세계랭킹 1위의 면모를 입증했다.
이런 그를 두고 스켈레톤 관계자들은 “맨땅에 헤딩하는 줄 알았더니 세계 최고가 됐다”며 혀를 내두른다. 윤성빈은 서울 신림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2년 처음 스켈레톤을 접했다. 당시 신림고 체육교사이던 김영태 서울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이사가 “점프력도 좋고 잘 뛰는 아이가 있다. 덩크슛도 할 줄 안다”며 강광배 연맹 부회장(현 한국체대 교수)에게 윤성빈을 추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런데 연맹 입단 테스트에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나타난 윤성빈은 달리기 기록이 전체 10등으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강 부회장은 “척 봐도 운동신경이 있어 보인다”며 윤성빈을 품었다. 이후 윤성빈은 3개월 만에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하며 한국체대에 입학하더니 2015~2016시즌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IBSF 월드컵 7차 대회서 한국 선수 최초로 우승하며 톱클래스 선수로 발돋움했다. 선수가 부족해 잠재력만 보고 윤성빈을 뽑은 것이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된 셈이다.
반면, 라트비아의 국민영웅 두쿠르스는 대를 이어 썰매를 타고 있다. 두쿠르스의 아버지 다이니스는 전직 라트비아 봅슬레이 챔피언, 두쿠르스의 친형 토마스는 2003년 라트비아 시굴다 월드컵 우승자로 경력이 화려하다. 다이니스가 선수 생활을 끝낸 뒤 1994년 시굴다 트랙의 관리자로 일하면서 두쿠르스는 자연스럽게 썰매를 접했다. 다이니스는 “두쿠르스가 썰매에 눕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썰매를 탈수록 기량이 일취월장했다”고 설명했다.
두쿠르스는 라트비아 공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학구파이지만 썰매를 향한 열정도 놓지 않았다. 그는 대학을 휴학한 뒤 처음 나선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7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여줬고, 2009~2010 시즌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8시즌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지키며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평창에서 숙명의 일전을 남겨놓은 두 선수는 장외 신경전도 치열하다. 평소 두쿠르스를 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 윤성빈은 올 시즌 월드컵에서 금메달 4개를 따내 2개에 그친 두쿠르스를 압도하면서 “이제 두쿠르스만 계속 보고 가야 할 시기는 아니다. 선수보다는 평창 트랙을 신경 쓰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이에 두쿠르스는 “안방에서 뛰는 윤성빈과 달리 나는 부담 없이 경기를 펼칠 수 있다”고 응수했다. 다만, 시즌 기록에서 드러나듯 두쿠르스의 노쇠화가 뚜렷해 현재까지는 올림픽에서 윤성빈의 우위가 점쳐진다. 두 선수는 오는 13일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리는 월드컵 7차 대회서 평창올림픽 최종 모의고사를 치른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