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박상기 법무장관이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방침을 언급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이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 있느냐”며 정부 규제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14만여명이 동의하고 나섰다. 시중 은행들은 가상화폐 거래용 실명 확인 서비스 도입 방침을 철회했다.
시중 은행들이 가상화폐 거래용 실명 확인 서비스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힌 지난 12일 서울 중구의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한 시민이 시세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해 말 정희찬(46·사법연수원 30기) 안국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정부가 법적 근거 없이 가상통화 관련 긴급 대책과 가상통화 투기 근절을 위한 특별 대책을 발표해 국민들의 재산권과 행복 추구권을 침해했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선 가상화폐를 화폐로 볼 수 있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법학)는 “가상화폐라고 이름 붙였는데 과연 화폐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법적 규율을 받아야 할 상황인지를 헌재가 판단해야 한다”며 “교환 가치가 있고 국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하면 국민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규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화폐 주조권은 국가에 있기 때문에 가상화폐가 화폐에 해당하면 어느 정도의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은행법에 “화폐 발행권은 한국은행만이 가진다”고 못 박혀 있다. 정 변호사는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어서 정부의 금융 감독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이어 “가상화폐가 화폐로서의 가치는 없지만 (주식이나 채권 같은) 유가 증권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면 그와 관련된 규율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을 지낸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도 “습관적으로 가상화폐라고들 하는데 화폐란 말을 쓰면 안 된다”며 “화폐는 가치의 저장 수단이자 교환 매개, 회계 단위인데 (가상화폐가) 교환 매개로 조금 쓰였다곤 하지만 화폐 가치는 일정하게 보존되고 화폐 자체가 아닌 물건값이 왔다 갔다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교수는 이어 “(일명 가상화폐의) 법적 성격 규정과 가격 등락폭, 거래 방식 등에 대한 제도적 장치,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정부가 부처 간 협의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면서도 “거래 전면 금지는 세계적 추세에 맞지 않고 (가상화폐) 실체를 좀 분명히 한 뒤 투자자를 보호할 법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처럼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의 법적 쟁점은 가상화폐를 화폐, 유가 증권, 상품 등 가운데 무엇으로 볼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13일 국회 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미국은 가상화폐를 화폐나 지급 수단이 아닌 일반 상품, 즉 재산으로 보고 소득세를 물릴 방침이다. 일본은 가상화폐의 화폐 기능을 인정해 결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되 거래 차익에 세금을 부과한다. 러시아와 베트남은 가상화폐 거래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한다.
다만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와는 사정이 좀 다르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이 한때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소 가운데 거래량 1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국내 가상화폐 거래량이 전 세계에서 20∼25%를 차지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투기 과열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가상화폐 정보업체인 미국의 코인마켓캡은 지난 8일(현지시간)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가격 일탈이 심하다”며 가상화폐 국제 시세에서 빗썸과 코인원, 코빗 등 국내 거래소 3곳을 제외한 바 있다. 가상화폐 광풍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