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이슈+] '최저임금 해결사'라는 일자리안정자금…소상공인에겐 '그림의 떡'

연장근무 포함 월 190만원 미만 근로자기준 현실적이지 않아 / 영세사업장 4대보험꺼려 신청안하기도 / 올해만 한시적 실시…내년은 불투명

전국 곳곳에 붙어있는 `일자리안정자금` 홍보 포스터. 사진=안승진 기자.

“일자리안정자금이요? 저 같은 소상공인은 신청하기 힘들어요.”

서울 종로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모(48)씨는 올해 정부가 최저임금(시간당 7530원) 상승에 따른 소상공인 보호책으로 내놓은 일자리안정자금 얘기를 꺼내자 이렇듯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씨는 “정부가 현실을 모르고 정책을 내놓았다”며 “이대로라면 내후년쯤에는 음식점이 버티지 못할 것 같다”고 고개 숙인 채 말했다.

지난해 정부는 올해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16.4% 인상이 결정되자 중소·영세기업의 부담을 덜기 위해 약 3조원 규모의 일자리안정자금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올해에 한해 월 보수 190만원 미만의 근로자를 고용한 30인 미만 사업장에 월 13만원까지 임금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다만 몇몇 생산직 근로자는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을 뺀 월 보수가 190만원 미만이면 신청할 수 있다. 아울러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하려면 근로자 모두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 

정부는 ‘최저임금 해결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자리안정자금 홍보에 나섰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씨는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을 포함한 ‘월 보수 190만원 미만’이란 신청 기준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의 매장에는 8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음식점 특성상 직원들은 아침부터 나와 영업을 준비하고 저녁에야 퇴근을 하므로 연장근무가 잦다. 주 6일 근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

지난해 시간당 최저임금 6470원 기준 이씨 매장의 신입직원은 월 200만7000원을 가져갔다. 올해부터는 230만원 가량 받을 예정이다. 이는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자격인 월 190만원 미만이란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아울러 직원들은 연차에 따라 임금이 달라진다. 신입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지만 오래 일한 직원은 그보다 많은 액수를 가져간다. 이 때문에 신입의 최저임금이 상승하면 다른 직원도 더 받아간다. 190만원 미만이라는 일자리안정자금 적용 기준을 맞추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기준에 맞추려면 기존 직원의 업무시간을 줄이거나 사람을 더 뽑는 선택을 해야 하지만 월 190만원을 내걸고 인력을 뽑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한 이씨는 한숨을 쉬었다.


소상공인들은 ‘고용보험’ 가입을 요구하는 일자리안정자금 요건도 신청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고용보험 가입은 곧 4대보험 가입으로 이어지는데, 영세한 사업장이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근로자들은 이를 피하려 드는 탓이다.

19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는 가정에 따라 4대보험료를 계산하면 사업주는 11만 7268원, 노동자는 9만4278원을 각각 부담해야 한다. 즉 양측이 부담하는 금액은 모두 월 21만1546원이다. 이는 일자리안정자금 최대지원 금액인 13만원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결국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을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단 1년간 국민연금 가입이력이 없는 신규가입자에 대해서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최대 90% 보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24년째 한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54)씨는 직원들이 4대보험 가입을 꺼려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을 하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씨는 “식당 직원 5명 중 일부는 조선족인데, 이들은 현금을 가져가려고 하지 임금의 일부를 보험료로 부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이어 “정부가 근로자들을 법적 제도권 안으로 들이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일자리안정자금만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자리안정자금이 올해만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정책이란 점도 소상공인들의 불만을 산다.

서울 동작구에서 양식집은 운영하는 안모(52)씨는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올해 안으로 경기상황이 확 나아지면 모르겠는데 가능해 보이진 않는다”며 “시간당 최저임금이 1만원까지 오른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한숨부터 나온다”고 걱정했다.

종로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씨도 “최저임금 인상분을 언제까지 세금으로 감당할 수 있겠느냐”라며 “일자리안정자금은 올해가 마지막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지난 9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편의점을 찾아 사업주에게 최저임금 준수 및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소상공인연합회 정원석 본부장은 “소상공인들에게 일자리안정자금에 대해 물으니 60% 넘는 사업장이 자신들은 해당사항이 아니라고 했다”며 “초과근무·야간수당을 더하면 상당수 업장의 직원 월급이 190만원을 넘는데 정책의 효용성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선임연구원도 “업종별로 근무여건이 다른데 모든 직종을 일관적으로 일자리안정자금 조건에 적용하려다 보니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며 “융통성 있는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에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생산직 근로자에 대해선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라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이 비과세소득으로 구분돼 이를 제외한 기본 월급 190만원 미만으로 예외 적용됐지만 다른 업종은 그렇지 않다”며 “소득세법이 업종별로 다시 수정되지 않는 이상 이대로 시행될 수밖에 없을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