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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정화 감독 “선수들 상처 줘선 절대 안돼…정치적 도구로 단일팀 이용하지 말아야”

‘국가’가 부르면 당연히 가야 하는 줄 알았다. 1991년 2월 12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체육회담에서 분단 이후 46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단일팀이 성사되자, 당시 탁구 대표팀 에이스이던 현정화(48) 렛츠런 감독은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그해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 단체전에 북한의 리분희(49)와 짝을 이뤄 참가하는 것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대회까지는 두 달 남짓 남아 손발을 맞출 시간이 적었지만 불만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현정화-이분희(북한)조가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남북 단일팀을 이뤄 복식 경기를 펼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다행히 주니어 시절부터 자주 겨룬 리분희와는 구면이라 서로 말이 잘 통했다. 일본에서 합숙훈련을 하는 동안 다른 층에 머물러 같은 방은 쓰지 못했다. 하지만 선수단 버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철조망을 넘어서는 우정을 쌓았다.

마침내 남북 단일 ‘코리아팀’은 단체전 결승에서 대회 9연속 우승을 노리던 중국을 세트스코어 3-2로 꺾고 한반도기를 시상대 맨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단일팀 단가인 ‘아리랑’이 울려 퍼지면서 선수는 물론 1000여명의 응원단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함께 울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코리아’로도 제작된 불세출의 탁구 스타 현 감독의 이야기는 성적과 감동, 그리고 남북 화해 모드 조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은 스포츠외교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 9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파견하는 방안이 논의되면서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회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 실제로 함께 훈련할 기간이 열흘 정도에 불과하고, 올림픽 출전의 꿈만 바라보며 달려온 국내 선수 몇 명이 북한 선수에게 밀려 벤치 신세로 전락하는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일팀 여부는 오는 20일 스위스 로잔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재하는 남북 간 회의를 통해 최종 결론 난다.
현정화 렛츠런 탁구단 감독이 14일 서울 송파구 종합운동장에 마련된 성화 도착행사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선전을 당부하고 있다. 연합
현 감독은 1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이 4년마다 오는 이벤트라 굉장히 민감한 문제다. 선수들 역시 북한 선수들이 오면 합을 다시 맞춰야 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차라리 올림픽이 아닌 다른 대회였으면 어떨까 싶다”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현 감독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단일팀을 구성한다면 반대한다. 그러나 남북문제는 우리 모두를 위해 풀어야 하는 숙제다. 기왕 대승적인 차원에서 단일팀을 만든다면 정치적 도구로 단일팀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추진했으면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현 감독은 “단일팀이 결성되면 선수들이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특히 아이스하키는 팀 경기라 조직력이 생명이다. 북한 선수들의 작전 이해도를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어 “다만 여자 아이스하키에 도움이 된다면 굳이 단일팀을 안 할 필요가 없다. 올림픽이 끝이 아니다. 현재 여자부 실업팀이 없는 상황인데 단일팀을 계기로 기업 후원이 늘어나면서 저변이 넓어질 수 있다. 단순히 정치적 이벤트로 끝낼 것이 아니라 선수 모두에 혜택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단일팀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12일 귀국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19일부터 진천에 재소집돼 마지막 전력 담금질에 돌입한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