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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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자료 있어도 '없는 척'…국민 알 권리 '제자리걸음'

정보공개 제도 시행 20년 / 공개청구 20배가량 늘었지만 정부 무관심에 거부 비일비재 / 애초에 비공개 뒤 항의 땐 공개 / 두루뭉술 규정 탓 입맛대로 운용 / 현장선 “어디에 쓸거냐”며 전화 / 전문가 “악의적 비공개 처벌을”
“버젓이 존재하는 자료를 없다고 하고 항의를 해야 내주는데 믿음이 가겠습니까?”

한 중소기업 관련 협회에서 활동 중인 김모씨와 허모씨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던 일만 떠올리면 분통이 터진다.

두 사람은 지난달 공정위가 모 대기업에 수십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최종 무혐의 처리한 사안과 관련한 자료들을 요구했다. 처음 공정위의 대답은 ‘자료 부존재’였다. 하지만 협회 차원의 항의가 이어지자 “착오가 있었다. 정식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하라”고 태도를 바꾸더니 끝내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영업상 비밀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였지만 허씨가 해당 사건 당사자라는 점에서 수긍하기 어려웠다. 결국 이들은 항의 끝에 최근 요구한 자료 2개 중 하나를 받았다. 김씨는 “협회 차원의 대응이 없었다면 이마저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공개를 기본으로 하고 예외를 두는 게 정보공개의 기본인데 거꾸로된 꼴”이라고 토로했다.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지 20년이나 됐지만 각 기관들의 ‘입맛대로’ 관행은 여전하다. 애초 공개 가능한 자료인데도 일단 거부하고 보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정보공개 제도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투명성의 근간이 된다는 점에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5일 행정안전부의 연도별 정보공개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 2만5475건이던 정보공개 청구는 2016년 50만4147건으로 20배가량 늘었다.

정보공개 수요는 이처럼 커졌지만 애초 ‘비공개’로 처리됐다가 신청자의 이의신청 후 공개되는 건수(비율)는 △1998년 12건(19%) △2008년 907건(29%) △2015년 1259건(35%) △2016년 1430건(37%) 등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처음부터 공개돼야 하는 정보 가운데 상당수가 비공개처리 되고 있는 셈이다.

이마저도 엉뚱한 자료를 내놓고 ‘공개’로 처리하거나 알맹이는 쏙 빼고 ‘부분공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공개해야하는 비공개 정보’는 더 많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는 현행 정보공개법이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개돼야 한다’ 등 두루뭉술한 규정만 둔 탓에 상급부서 방침이나 담당자 재량에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2017년 광역단위 공사·공단 임원추천위원회 명단 청구결과’를 보면, 동일한 청구에 전체 42곳 중 29곳(69%)만 명단을 공개하고 나머지는 각종 사유를 들어 이름 등을 빼놓은 부분공개, 비공개(무응답 포함)처리했다. 이에 센터가 다시 10곳에 이의신청을 한 결과 6곳은 관련 정보를 공개했지만 부산도시공사 등 3곳은 ‘기각’, 인천환경공단은 ‘인용’처리는 했지만 이름은 비공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경우 청구자가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법원 등의 판단에 따라 정보를 받을 수 있지만 번거로운 절차 등으로 인해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점을 노려 기관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는 고의적으로 비공개처리하거나 뭉그적거리는 일이 적지 않다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가에선 “정보공개 청구를 할 때 학교 이메일을 절대 쓰지 말라”는 불문율이 떠돌기도 한다. 청구서에 학교 이메일을 기입하면 담당자들이 학생으로 판단, 무시하기 일쑤란 이유에서다.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일선 담당자들도 고충을 하소연한다. 자칫 자신이 공개한 자료가 조직에 부메랑이 돼 날아오면 ‘독박’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공개에 인색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담당자들이 일일이 전화를 걸어 “어디에 쓸 거냐”고 묻거나 “자료를 보내줄 테니 청구를 취하해 달라”고 읍소하는 일이 벌어지는 데에는 이런 속사정이 있다.

정보공개센터 벨라 활동가는 “정보공개의 수준을 공공기관 평가의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며 “최대 7년 이하의 징역을 부과하는 공공기록물관리법처럼 정보공개 역시 악의적인 비공개를 처벌할 근거조항을 만들고 정보공개위원회를 상설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