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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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반발에…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 사실상 철회

교육부, 16일 대책안 발표 예정 / / 유예·철회 등 단정적 표현 보다 사회적합의 통한 해결방향 제시 / 수차례 말바꾸기에 비판 여론 / 수능개편·외고폐지 등 맞물려 / 교육 정책 불신 갈수록 심화
정부가 오는 3월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특별활동)을 금지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3주간 영어 수업 금지에서 유예로, 재검토로 수차례 ‘말 바꾸기’를 한 교육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15일 교육부에 따르면 정부는 16일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겠다는 내용의 대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대책안에는 ‘유예’나 ‘철회’와 같은 단정적 표현보다는 유아단계 영어 교육의 필요성 여부에 관한 사회적 합의점을 찾는 의견수렴을 거치겠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앞으로 영어 공교육을 어떻게 내실화할지에 관한 기본 방향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서구의 한 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교육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정책을 보류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스1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27일 ‘유아교육 혁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오는 3월부터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서민들은 영어교육을 아예 하지 말라는 이야기냐”, “영어유치원 등 영어학원들 배만 불리는 탁상행정이다” 등의 비판이 잇따랐다. 보건복지부 관할인 어린이집에 다니는 같은 연령대의 유아는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점도 교육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금지안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정치권이 나서서 교육부의 정책 수정을 주문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최근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의 만찬에서 정책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영어 조기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 위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6·13 지방선거에 악재(惡材)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청와대도 교육부 규제안에 제동을 걸었다. 교육부가 복지부와 기초적인 협의를 거쳐 지난 12일 ‘유치원·어린이집 영어교육 금지 1년 유예 후 시행’ 안을 보고하자 청와대가 영어 조기교육 규제에 관한 추가적인 의견수렴 및 영어 공교육 내실화 방안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이번 대책안이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과 외국어고·자율형사립고 폐지안 등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학부모들과 정치권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하반기 문재인정부 정책 분야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교육정책 지지율은 35%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교육정책들을 보면 학교 현장과 전후 사정을 전혀 모르는 ‘얼치기’ 전문가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꼬집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