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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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굴기 범람의 시대… 우리의 선택은?

무섭게 큰 중국에 ‘No’라고 말도 못하고 그저 ‘구애’만
최근 남태평양의 조그만 섬나라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인구 2만1500명의 소국 팔라우가 “대만과 단교하라”는 중국의 요구를 뿌리쳤다. “(우리 미래는)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며 중국에 맞섰다.

팔라우 대통령 대변인은 “우리는 법치국가이자 민주국가다. 중국이 여행지 명단에서 팔라우를 제외해봤자 어떤 영향도 없다”고 했다. 팔라우는 30여개 섬으로 이루어진 휴양 국가로,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관광객의 절반이 넘는 중국인 관광객 감소는 경제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팔라우는 ‘자존심’을 지켰고, 중국은 체면을 구겼다. 중국과 지난 1년여 동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을 겪은 우리로서는 팔라우의 기개가 놀랍기만 하다.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
지금은 굴기(?起) 범람의 시대다. 굴기는 최근 중국을 표현하는 말 가운데 가장 흔히 사용되는 단어일 것이다. ‘중국 굴기’는 원래 2050년 세계 일류국가를 지향하는 중국의 중·장기적 국가전략을 의미한다. 새롭게 나온 용어는 아니지만, 여기서 파생돼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분야에서 굴기가 사용되고 있었다. 군사를 비롯해 경제와 첨단산업, 우주 개발 등 포괄적인 분야에서 AI(인공지능), 로봇, 철도, 반도체 등 구체적인 산업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굴기가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중국이 대규모 투자를 하거나 앞서가는 분야, 또는 경쟁력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굴기’란 단어를 붙여 중국의 성장과 부상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왜 ‘굴기’로 중국의 부상을 표현할까? 굴기의 사전적인 의미는 ‘몸을 일으키거나, 보잘것 없는 신분으로 성공하여 이름을 떨친다’는 뜻이다. 영어사전을 보니, 말 그대로 ‘일어서다’(Rise), ‘출세하다’(Spring from Humble Family)라는 의미였다. 여기에 더해 ‘중국 굴기’를 이야기할 때는 경제·군사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에 대한 서방국가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불안한 시선도 담겨 있다.

실제로 중국은 중화민족 부흥을 앞세울 때마다 아편전쟁 이후 100여년 동안 서방으로부터 당한 굴욕을 딛고 ‘굴기’하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지난해 10월 18일 개막한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꿈”을 32차례나 언급한 것도 의미가 다르지 않다. 세계에 대한 중국의 ‘반격’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미국이 괜히 지난 연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중국을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수정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공세를 예고한 것이 아니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 스마트폰 업체인 화웨이의 미국 진출을 의회가 무산시킨 것이나,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가 미·중교류재단(CUSEF)의 자금 지원 제안을 거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경계하는 것이다. 그만큼 중국굴기에 따른 ‘차이나포비아’가 예사롭지 않다는 방증이다.

우리는 팔라우처럼 중국에 직접 ‘노(No)’라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처지다. 그러기에는 우리와 중국은 경제와 안보가 너무 밀접하게 얽혀있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중국을 경쟁자로 규정하고 맞상대할 수는 더더욱 없다. 중국의 평창동계올림픽 참석 인사로 한정(韓正) 정치국 상무위원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 주석의 방한을 계속 구애하는 우리의 처지가 딱하기만 하다.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