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제거… 투자심리는 위축
이번 조치로 약 한 달 동안 신규 거래가 막혀 있던 가상화폐 거래소에 새로운 은행 입출금서비스가 도입되며 정책의 불확실성이 제거됐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정부가 거래소를 폐쇄하는 대신 문제가 있는 거래소를 걸러내는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금융당국이 23일 내놓은 가상화폐 대책의 골자는 가상화폐 거래 실명확인 강화와 자금세탁 방지다. 금융당국은 자금세탁을 의심할 수 있는 거래 유형으로 △법인 또는 단체가 거래소와 금융거래를 하는 경우 △이용자(투자자)가 가상통화 거래를 위해 1일 1000만원 이상 또는 7일간 2000만원 이상 자금을 입출금하는 경우 △취급업소(거래소)가 취급업소의 임직원으로 추정되는 자와 지속적으로 송금 등 금융거래를 하는 경우를 제시했다.
시중 은행들이 예전과 다름없이 거래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을지도 예단하기 힘들다. 이날 은행들은 30일부터 서비스를 재개하겠지만, 신규 계좌 개설에 앞서 기존 고객의 실명전환부터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은행은 당장 강화된 의심거래 보고 의무 기준에 맞춰 가상화폐 거래 관련 모니터링 등의 인력을 추가해야 하고 이사회와 최고경영진의 책임도 무거워진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앞으로 서비스가 예전처럼 (허술하게) 이뤄진다면 은행이 자금세탁과 관련해서 심각한 평판 위험에 노출된다”며 “인력도 보강하고 시스템을 철저하게 교육시키고 하는 것을 다 지킬 자신이 있으면 하고 자신이 없으면 자체 판단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번 점검에서 일부 가상화폐 거래소가 법인계좌를 통해 입금받은 투자자들의 돈을 거래소 대표이사와 임원들의 계좌로 대거 이체한 사실이 확인됐다. 사기나 횡령, 유사수신 등의 범죄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A 거래소는 가상화폐 거래를 위해 이용자들이 송금한 109억원 중 42억원을 대표자 명의, 33억원은 사내이사 명의의 계좌로 이체했다. B 거래소는 사내이사 명의 계좌로 586억원을 모은 뒤 또 다른 가상화폐 거래소인 C사 계좌 2개에 나눠 송금했다. B 거래소는 “가상화폐가 부족해서 다른 거래소에서 직접 사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같이 법인계좌를 이용하는 가상화폐 거래소는 총 60여개에 달했다. 지난 8∼16일 6개 은행을 대상으로 점검한 결과로, 향후 상시점검을 하면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에 수십억원의 자금이 가상화폐 거래소 계좌에서 특정 개인이나 법인 명의 계좌로 이체된 뒤 현금으로 인출된 사례도 적발됐다. 금융당국은 마약대금 등 불법자금이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국내로 반입된 것으로 보고 수사당국에 이첩했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비정상적인 자금거래에 대해 은행의 추가 실사를 거쳐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의심거래로 보고하고, FIU는 불법 혐의를 판단해 검찰과 경찰, 국세청 등에 통보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관세청은 현재 여행경비 명목으로 반출한 고액의 현금으로 태국·홍콩 등지에서 가상화폐를 산 뒤 국내로 전송해 판매하는 ‘원정투기’ 혐의자를 상대로 조사하고 있다.
이들은 현행 규정상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소지할 수 있는 여행경비에는 한도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 수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들고 가상화폐가 싼 태국 등으로 출국했다. 이어 현지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구매한 뒤 자신의 코인 지갑으로 전송하고 한국 거래소에서 이 코인을 판매해 차익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관세청은 이들이 지난해 5월부터 이런 방식으로 입출국을 반복하며 투기행위를 벌인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백소용 기자, 세종=이천종 기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