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강원도 강릉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올림픽 자원봉사자들. 왼쪽부터 프랑스 출신 줄리엣, 본지 안승진 기자, 일본 출신 마리코 사이토, 러시아 출신 다나. |
올림픽을 흔히 세계인의 축제라고 한다. 스포츠 선수뿐 아니라 세계인이 모여 한마음으로 경기를 응원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원봉사자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마다 올림픽 자원봉사자를 전 세계에서 모집한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음식·숙소 등 자원봉사자에 대한 각종 논란이 잇따랐지만 실제 외국에서 올림픽을 찾은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15일 강원도 강릉의 한 카페에서 한국·일본·러시아·프랑스 출신 자원봉사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평창에서 자원봉사자로 만나 친구가 됐단다. 경남 창원에서 온 김범수(20)씨와 러시아 출신 다나(25), 일본에서 온 마리코 사이토(24)와 프랑스에서 온 줄리엣 에이브릴(22) 이 4명의 자원봉사자에게 ‘평창올림픽 자원봉사’ 체험기를 물었다.
◆ 한국 사랑? 스포츠 사랑? 이들이 평창을 찾은 이유
기자=“자원봉사를 하기위해 비행기 표까지 자비로 내며 한국에 왔다고 들었다. 왜 평창 동계 올림픽 자원봉사에 어떻게 지원하게 된 것인가? 특별한 이유가 있나?”
프랑스 줄리엣(이하 프)=“프랑스에서 한국의 방송채널을 보며 음악과 사랑에 빠졌다. 한국의 인디밴드 잔나비와 혁오밴드를 좋아한다. 한국에 올 이유가 필요했다. 그리고 올림픽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원봉사에 지원할 때 (자기소개서) 질문이 9개 정도 있었다. 대학리포트 쓰는 줄 알았다. 면접은 스카이프(인터넷전화)로 봤다. 사실 올림픽에 큰 관심은 없었으나 한국이 좋아서 왔다”
일본 마리코(이하 일)=“난 스포츠 특히 피겨스케이팅의 열렬한 팬이다. 토리노 올림픽 때부터 일본 피겨스케이팅 시즈카 이라카와 선수 경기를 보며 매력에 빠졌다. 올림픽 현장에서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보고 싶었다. 또 시즈카 아라카와가 해설가로 평창에 왔다고 들었는데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해 기대도 하고 있다”
러시아 다나(이하 러)=“인터넷을 하다가 자원봉사 모집공고를 봤다. 대학교도 졸업해 여유가 생겼고 평소에 한국에 관심이 많아 지원했다. 올림픽 경기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한국 김범수(이하 한)=“로이터·AFP 같은 외신 통신사 사진기자가 꿈이다. 올림픽 현장의 사진기자가 하는 일을 보고 싶었다. 전 세계 친구들을 만나 교류할 기회라고 생각해 자원봉사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했다”
강릉 중앙 시장서 한국의 문화를 즐기는 자원봉사자들. 김범수(오른쪽 첫번째)씨, 줄리엣(오른쪽 세번째), 마리코(오른쪽 다섯번째). |
◆ ‘비정상회담’을 방불케 하는 4개국 청년들의 한국생활
기자=“4명 모두 굉장히 친해 보인다. 올림픽 기간 중 어떻게 만났고 어떤 경험을 했나?”
한=“자원봉사자들은 도착 순서대로 묶여 방을 배정받는다. 우선 저희 4명은 속초 같은 숙소에 배정받았고 일하는 장소도 비슷하다. 여자 3명은 외국인끼리 방을 배정받아 친해졌고 저는 자원봉사 현장에서 대화하다 친구가 됐다”
일=“자원봉사를 쉬는 날 우리끼리 강릉 중앙 시장에 놀러 가곤 한다. 거기서 닭강정을 먹었는데 너무 맵더라. 남들은 다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매워서 혼났다. 콧물까지 흘렸다. 호떡도 정말 맛있고 시장의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좋았다”
프=“우린 한국의 음식을 즐기며 일상을 보내는데 그중 컵라면과 김을 정말 사랑한다. 프랑스에서는 김이 비싸고 구하기도 힘들다. 강릉 식당에 가서 김을 몇 개씩 더 달라고 해 먹기도 하고 숙소에도 김을 40여개나 쌓아뒀다. 한국에서 많이 먹어둬야지!”
러=“속초 숙소에 자장면 배달이 되더라. 놀랐다. 자장면을 자원봉사하며 처음 먹어봤는데 처음 느껴보는 맛이었다. 정말 맛있었다”
◆ ‘선수들을 눈앞에서!’ 자원봉사자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
기자=“올림픽 자원봉사를 하며 특별한 경험도 많이 겪었을 것 같다”
프=“근무지가 컬링센터다. 가끔 한국 컬링 대표팀 선수·코치와 인사를 나눈다. 지난 12일에 경포해변에 놀러갔는데 우연히 이들과 마주쳤다. 날 알아보더라. 사진까지 찍어줬다. 그리고 다음날 올림픽 파크에 놀러갔는데 그곳에도 컬링 코치진이 있는 게 아닌가. 코치진도 ‘인연’이라고 생각했는지 내게 올림픽 선수단 공식 핀(배지)를 줬다. 내게 귀중한 선물이라 집에 고이 간직해뒀다”
한=“저도 프랑스 줄리엣과 같은 장소에서 일한다.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준비운동을 하는데 미국 컬링 대표인 맷 해밀턴이 제게 풋볼을 던져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보고 같이 하자고 권유해 몇 번 풋볼을 던졌다. 언제 외국 국가대표와 대화와 운동을 해보겠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러=“러시아선수단(OAR) 남녀 혼합 복식(믹스더블) 컬링 대표팀이 3위로 동메달을 받게 됐다. 인형을 수여하는 ‘베뉴 세리머니’ 리허설을 내가 맡은 경험이 있다. 선수인 척 인형을 받는 역할이었는데 조국 대표로 메달을 받는 거 같아 정말 뿌듯했다. 러시아 대표팀 선수들에게 세리머니 설명도 직접 해줬는데 감격스러웠다”
강릉 중앙 시장서 한국의 문화를 즐기는 자원봉사자들.왼쪽부터 김범수씨, 미국 출신 제니퍼 최(24), 줄리엣. |
◆ 말 많고 탈 많았던 자원봉사. 이들에겐 ‘합격점’
기자=“지난 5일부터 자원봉사를 했다고 들었다. 열흘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만족하나?”
일=“정말 만족한다. 내 근무지는 강릉 아이스 아레나다. 앞서 밝혔듯이 피겨를 좋아하는데 운이 좋았다. 우상인 시즈카 이라카와 선수도 실제로 봤다. 대화는 아직 못 걸었지만... 쉬는 날 여행을 하며 한국문화도 많이 즐겼다. 한국에 딱히 관심 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한국에 대해 이미지가 좋아졌다”
러=“다들 춥다고 하는데 난 시베리아에서 왔다. 여긴 완전 봄 날씨다(웃음). 내게 평창동계올림픽은 ‘휴가’다. 대학을 졸업하고 쉬는 기간인데 자원봉사를 하며 머리도 식히고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한=“우리 모두 얘기할 때 불편함이 없다. 각자 언어와 문화가 다르지만 올림픽으로 하나로 묶였다. 여행하며 친구정도는 만들 수 있지만 동료를 만들긴 쉽지 않지 않나. 지금 우리는 '동료'다”
프=“난 한국이 좋아 자원봉사 후에도 여행을 계속할 예정이다. 내게 올림픽은 ‘모험’이었다. 지난해에도 한국 여행을 했는데 그때 볼 수 없었던 문화들을 자원봉사하며 체험했다. 여행코스에서 느낄 수 없었던 한국의 새로운 면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강릉=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사진= 김범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