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참석했던 한 송년 모임. 1월 제주여행을 하자는 이야기 중 한라산 등반을 계획하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싫다’는 표정을 지은 건 당연했다. 한라산 등정이 확정되었을 때 싫다는 표정은 ‘짜증’으로 변했다.
제주에 도착했을 때 눈이 많이 내린 것을 유난히 기뻐한 건 “등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실제로 신은 우리에게 등반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펜션에서 한라산까지 가는 길을 빙판으로 만들어 자동차 바퀴를 헛돌게 했고, 중턱부터 주차를 통제시켜 수킬로미터를 걸어가게 만들었다. 걸음으로는 입산 통제시간 전까지 한라산에 도저히 도착할 수 없었다. 기쁜 얼굴로 몇번이나 “돌아가죠”를 외쳤다.
불행하게도, 일행 중엔 추진력 하나로 일생을 살아온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길거리에서 히치하이킹을 했고, 지나가는 택시의 문을 붙잡았다. 그의 인솔하에 통제시간 5분 전 우리는 한라산 입구 영실휴게소에 도착했다. 그때 내 얼굴엔 체념과 황당이 섞여 있었다. 지루한 경사를 한 시간 올라가는 동안 내 얼굴은 ‘지옥’을 맛본 표정으로 변했다. 남들은 그렇게 쉽게 올라갔건만 나는 ‘신과 함께’를 찍는 줄 알았다. 35년 인생 지은 죄를 다 헤아린 끝에 병풍바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안개가 자욱했다가 사라지는 순간에 반전이 일어났다.
왜 사람들이 ‘겨울 한라산’을 말하는지 실감하게 됐다. 눈이 내려앉은 하얀 산 병풍 밑에 하얀 구름이 있었고, 그 아래 나무엔 온통 눈꽃이 피어있었다. 모든 사람의 입에서 감동의 탄성이 흘러 나왔다.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여기 올라온 사람들 중 복을 쌓은 사람이 있나봐, 여긴 안개가 잘 안 걷히거든”라고 말했다. 죄를 헤아리며 빌었기에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도형 정치부 기자 |
이제 나는 누가 뭘 하자고 할 때 “싫다”는 말을 잘 하지 않게 될 것 같다.
이도형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