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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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라이벌의 ‘뜨거운 우정’… 베이징까지 가나

빙속 500m 두 선수 관계 역전에도 서로 깜싸안고 손잡고 링크 돌아 / 중학생때부터 만나 우정 쌓아와 / 李 “패배 했어도 기분 나쁜 적 없어” / 고다이라 “베이징 가면 나도 갈 것”
이상화(왼쪽)와 고다이라 나오(일본)가 18일 강원도 강릉 오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를 마친 뒤 어깨동무를 하고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강릉=남정탁 기자
‘빙속여제’ 이상화(29)는 ‘늦깎이 스타’ 고다이라 나오(32)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의 최강자로 올라선 뒤 라이벌 구도에 매우 예민한 태도를 보였다. 이번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이상화의 이름 뒤에는 항상 고다이라가 거론됐고, 그때마다 이상화는 “비교하지 말아 달라”라면서 고다이라를 지칭해야 할 때는 이름 대신 ‘그 선수’라 불렀다.

이상화가 2010 밴쿠버와 2014 소치에서 빙속 여자 500m를 제패하며 이 종목 최강자로 군림할 때 고다이라는 12위, 5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평창을 앞두고 두 선수의 관계가 역전됐고, 두 선수의 경쟁구도가 ‘한일전’ 양상으로까지 흐르면서 이상화는 무거운 부담감을 홀로 느껴야 했다. 고다이라 역시 이상화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팽팽했던 두 선수 간의 신경전은 18일 여자 500m 레이스가 끝나자 뜨거운 눈물과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최근의 상승세대로 고다이라가 36초94로 금메달, 이상화가 37초33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성적이 결정되자 이상화는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링크를 돌며 홈 관중에게 인사하던 이상화에게 고다이라가 다가왔고, 이상화는 눈물을 흘리며 고다이라에게 기댔다. 그런 이상화를 고다이라가 감싸안았다. 둘은 손을 맞잡은 채 링크를 돌며 ‘뜨거운 우정’을 선보였다.

라이벌 관계가 부각됐지만, 사실 이상화는 중학교 시절부터 고다이라와 오랜 기간 국제 대회 경험을 통해 우정을 쌓은 절친한 관계였다. 경기가 펼쳐질 때는 치열한 경쟁을 펼치지만 경기가 끝나면 패자가 승자에게 먼저 다가가 축하해 주는 사이였다.

고다이라는 “3년 전 서울 월드컵에서 내가 1등을 하고 바로 네덜란드로 출국해야 돼서 공항에 가야 했다. 그때 상화가 택시비를 선뜻 내줬다. 패한 선수라면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는데 이런 친절에 너무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면서 옛 추억을 떠올렸다. 고다이라의 다소 엉뚱한 발언에 “귀엽다”는 말을 연신 내뱉은 이상화는 “고다이라와는 서로 선물도 주고받고, 휴식기 때에는 한국에 찾아와 같이 놀러다닐 정도로 친한 사이다. 고다이라에게 패했을 때 단 한 번도 기분 나쁜 적이 없었다”며 남다른 우정을 과시했다.

두 선수의 우정은 4년 뒤 열릴 베이징 올림픽 출전 여부에도 맞닿아 있다. 이상화는 “작년에 고다이라에게 ‘평창올림픽 이후 베이징에도 출전할 거냐’고 물어보자, 고다이라는 ‘상화가 출전하면 하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적어도 이번 올림픽이 선수로서의 이상화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경기는 아닐 것이다”면서도 “아직 4년 뒤 올림픽 도전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우선 제대로 쉬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강릉=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