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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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손재일 한화지상방산 대표 “K-9, 해외마케팅 강화… 2025년 세계 10위권 방산기업 도약”

손재일 한화지상방산 대표 / 작년 핀란드·印·노르웨이 잇단 수출 / 유럽·동남아 이어 중동시장 진출 추진 / 최종 목표는 미국 수출… 경쟁력 충분
지난해 국내 방위산업계는 국산 K―9 자주포의 연이은 해외수출 소식에 크게 고무됐다. 3월 핀란드 48문→4월 인도 100문→12월 노르웨이 24문으로 이어진 낭보(朗報)에 이전까지 방산비리로 얼룩졌던 방산업계는 모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2015년까지 K―9은 삼성 계열사였던 삼성테크윈의 주력 제품이었다. 수출시장 개척이 더디고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2015년 삼성탈레스와 함께 한화에 매각됐다.

삼성가(家)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던 K―9은 한화에 둥지를 튼 뒤 면모를 일신해 세계시장에서 명품 자주포의 위상을 키우고 있다. 덩달아 K―9을 생산하는 한화지상방산은 국내 방산업계의 대표주자로 발돋움했다. 올해는 지난해 실적을 바탕으로 수출선 다변화와 신(新)사업 발굴에 공들이고 있다. 사업을 진두지휘 중인 손재일(53) 한화지상방산 대표를 지난 20일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사옥에서 만나 K―9 수출에 얽힌 뒷얘기와 미래 청사진을 들었다. 손 대표는 “한화그룹은 2025년 세계 10위권 방산업체로 도약해 국가안보와 책임 국방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사업으로 국가에 헌신하겠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구상이다.

―핀란드에 이어 노르웨이에도 K―9을 수출했다. 연거푸 북유럽에 자주포를 수출할 수 있었던 배경은 뭔가.

“K―9의 뛰어난 성능과 기술이 결정적이었다. 한화지상방산은 노르웨이 자주포 도입사업에서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방산업체와 동등하게 경쟁해 수주에 성공했다. 동계시험과 제안서 평가 등 여러 단계에서 경쟁사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우리 군이 1999년부터 실전 운용하면서 이미 성능이 검증됐고, 운용 노하우 축적을 통해 성능개량을 진행했던 것도 수주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K―9의 합리적 가격도 빼놓을 수 없다고 본다. K―9의 정부 납품가는 20년 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우리 군에 1000여문이 배치되면서 효율화를 통해 생산 비용이 크게 줄어든 덕분이다. 그래서 수출가격이 독일산 자주포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안정적인 후속 군수지원 역시 고객에게는 매력일 것이다.”

손재일 한화지상방산 대표가 20일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사옥 내 접견실에서 K-9 자주포 모형을 들고 K-9 수출과 방위산업 발전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지난해 12월 노르웨이 수출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단연 2016년 1월 노르웨이 현지에서 진행됐던 동계 시험평가를 꼽을 수 있겠다. 도전장을 던진 각국 자주포는 영하 30도를 밑도는 혹한에 허리까지 쌓인 눈밭을 질주하며 목표물을 정확히 맞히는 사격까지 끝마쳐야 했다. 당시 시험평가 현장에는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인접국 군 관계자도 대거 참관 중이었다. 시험평가가 추가 수출이나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업체 간 신경전이 치열했다. 막상 평가가 시작되자 경쟁사 자주포들은 눈길에서 궤도가 끊어지거나 중간에 시동이 꺼지는 사고가 빈발했다. 반면 K―9은 눈 덮인 산길과 경사면을 거침없이 달리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밀사격을 펼쳤다. 장관이었다. K―9의 성능에 감동한 핀란드는 노르웨이보다 더 빨리 K―9 도입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혹한에서 분투했던 회사 시험평가팀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현재 추가 수출을 모색 중인 곳은 있는지.

“올해는 (유럽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와 중동 국가들을 염두에 두고 수출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우리 군이 쓰던 K―9을 판매했던 핀란드 모델과 동일한 방법으로 에스토니아 정부에 제안한 상태다. 인도에서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중동 국가에도 타진 중이다. 기존 수출국을 중심으로 추가 물량 확보를 위한 마케팅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영국, 스페인 시장도 넘보고 있다. 최종 목표는 미국 시장 진출이다. 미국 육군 자주포 M―109A7은 사거리가 30㎞ 수준이지만 K―9은 40㎞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실제로 K―9은 미국의 M109A7 팔라딘과 영국 AS90 자주포보다 우수하고, 세계 최강 자주포인 독일 PZH2000 판저파우스트와 비교해도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세계 자주포 시장은 어떻게 변모할 것으로 보나.

“첨단기술이 집약된 국방 로봇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만 당분간은 국지전에 투입 가능한 자주포와 같은 재래식 무기들이 방위산업 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본다. 따라서 현재 운용 중인 자주포를 개량하거나 신형 자주포를 개발하려 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도 자동화와 부분적 무인화, 사거리 연장, 사격속도 향상, 승무원 감소 등을 목표로 한 신형 자주포 개발이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K―9이 잘 팔리고 있지만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신사업도 중요하다. 방산시장에 새롭게 출시할 제품은 있는지.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다양한 아이템 개발을 추진 중이다. 우선 올해부터 생산이 시작된 105㎜ 차륜형 자주포(K105HT)가 있다. 기존에 차량으로 견인하던 구형 105㎜포를 5t 트럭에 탑재한 것이다. 자동화가 이뤄져 사격 후 신속한 이동이 가능하고 운용인원도 9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 국방로봇 개발도 진행 중이다. 폭발물 탐지제거로봇, 보병용 다목적 무인차량 등 지상로봇 분야 정부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개발이 완료되면 우리 군의 인명보호와 병력감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젤 잠수함의 납전지를 리튬전지로 대체하는 사업도 포함돼 있다.”

―한화는 2015년 삼성계열 방산업체인 삼성테크윈(현재 한화테크윈)과 삼성탈레스(한화시스템)를, 이듬해인 2016년 두산DST(한화디펜스)를 인수해 국내 굴지의 방산기업으로 거듭났다. 인수합병(M&A)을 거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

“한화가 인수를 하기 전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군사대국임에도 방산업체 수준은 세계 40위권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수합병을 마친 뒤인 지난해 한화의 방산사업은 매출 규모 4조3000억원을 기록해 세계 19위로 뛰어올랐다. 기동·화력·정밀타격·항공우주·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 종합방산업체로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외형적 성장과 함께 내실을 다지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고(高)품질 제품과 솔루션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한화는 그룹 차원에서 방산분야 계열사에 대한 재편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개편의 의미와 기대효과는.

“방위산업에 대한 한화그룹의 시각은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남다르다. 좋은 무기를 군에 공급하면 국방력 강화와 국가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 삼성과 두산의 방산분야 계열사를 인수한 뒤 분산된 사업 역량을 통합하고 재조정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면 한화테크윈에서 K―9 생산을 담당하는 방산사업본부를 독립법인으로 분할해 한화지상방산을 신설하고 한화디펜스 지분을 보유하도록 했다. 신속하고 유연한 의사결정을 가능케 하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적응할 경쟁력을 갖추는 게 목표다.”(K―9을 생산하는 한화지상방산은 지난해 7월 사업부문 재편을 통해 한화테크윈에서 분리돼 독립했다.)

―박근혜정부의 방산비리 척결 기조로 한동안 방산업계가 크게 흔들렸다. 문재인정부에서도 기류는 이어지고 있다. 방산업계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을 잠재울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방위사업비리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방위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구동성으로 ‘그동안 국방력 강화에 이바지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했는데, 그 사명감이 의심받는 환경에 처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들 한다. 일부 해외무기 도입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비리를 국내 방산업계 전체의 비리로 침소봉대(針小棒大)하고, 개발과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방위산업 전체의 부정이나 비리로 치부한 탓이다. 이는 방위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키우는 결과를 야기했다고 본다. 다행인 것은 현 정부가 방산비리 척결 못지않게 방위산업 육성에도 적극 나서 차츰 활력을 되찾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차원에서는 윤리경영 활동을 강화해 비리 근절에 노력하고, 정부는 비리 행위에 대한 유형별 접근을 통해 비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국내 방산업계의 경쟁력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여겨진다.”

대담=박병진 군사전문기자
정리=박수찬 기자 psc@segye.com

손 대표는

●1965년생 ●고려대 경영학과 ●㈜한화 방산팀장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상무 ●한화테크윈 방산사업본부장 ●한화지상방산㈜ 대표이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