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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속 자존심 이승훈…공기저항 많은 앞자리서 팀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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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선수 경험 최대 강점으로 /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새 역사 써 / 첫 정식종목 매스스타트 결과 주목
21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트장에서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팀추월 결승에 진출한 이승훈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2010년 이전까지 단거리 스프린터들의 전유물이었다. 1987년 한국인 최초로 500m에서 세계선수권 1위를 차지한 배기태를 시작으로 1992 알베르빌 남자 1000m 은메달로 올림픽 한국 빙속 사상 첫 메달을 따낸 김윤만, 이후 이규혁, 이강석, 모태범, 이상화 등 세계무대를 주름 잡던 한국 빙속 선수들은 500m와 1000m를 뛰던 스프린터였다.

그러나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한 청년 덕분에 한국 빙속 역사에 장거리 종목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바로 한국 장거리 빙속의 ‘대들보’ 이승훈(30·사진)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밴쿠버에서 5000m 은메달과 1만m 금메달을 따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신장과 체격 등 피지컬 차이를 순발력과 순간 가속력으로 극복이 가능한 단거리와는 달리 장거리는 신체 조건이 절대적이다. 이승훈은 뛰어난 지구력을 바탕으로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국제무대 장거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야말로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에서 아시아의 자존심인 셈이다.

이승훈이 인종적, 신체적 한계를 딛고 장거리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는 비결은 쇼트트랙 선수 경험을 꼽을 수 있다. 본래 시작은 스피드스케이팅이었으나 중학교 시절 쇼트트랙으로 전향해 2009년까지 쇼트트랙 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번번이 대표선발전에서 떨어지면서 이승훈은 다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돌아왔고 이 선택은 한국 빙속 역사를 바꿨다. 쇼트트랙에서 체득한 부드러운 코너링으로 직선주로에서의 약점을 보완한 이승훈은 장기인 지구력을 앞세운 막판 스퍼트 능력으로 종목 전향 1년 만에 올림픽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다.

남자 팀추월 대표팀이 소치에 이어 2연속 올림픽 은메달을 따낼 수 있었던 것도 이승훈이라는 걸출한 에이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팀추월은 공기 저항을 많이 받는 맨 앞자리 주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한국은 선두 자리를 이승훈이 주로 맡으면서 레이스를 이끈 덕분에 다른 나라들과의 대등한 승부가 가능했다. 이로써 이승훈의 올림픽 메달은 4개(금메달 1개, 은메달3개)로 늘었다. 한국 빙속은 물론 아시아 빙속 선수 중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가 됐다. 
남자 팀추월 노르웨이와의 결승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 이승훈, 김민석이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번 평창에서 5000m와 1만m에서 각각 5위와 4위에 오르며 선전하긴 했지만 이승훈의 주종목은 팀추월과 매스스타트다. 특히 평창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빙속의 쇼트트랙’ 매스스타트에서는 세계랭킹 1위을 굳건히 지키고 있어 초대챔피언이 유력하다. 경기 뒤 이승훈은 “목표가 금메달이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많은 분들의 응원 덕분에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다. 후배들이 너무 든든하게 받쳐줘서 고맙다. 앞으로는 선두에서도 잘 끌 수 있는 후배들이 되리라 믿는다”며 후배들의 성장을 독려했다.

강릉=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