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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 |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정신을 필요로 한다. 근대과학문명으로 대변되는 ‘힘과 권력의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생명과 평화의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길은 무엇일까? 바로 동양의 전통가치인 효(孝)사상을 혁신한 효정(孝情)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동양에서 효(孝)는 인(仁)의 실천적 덕목으로서 자리매김해 왔다.
‘효정’이라는 말은 효(孝)와 심정(心情)의 복합어이다. 이 말은 무엇보다도 ‘심정’을 바탕으로 ‘효정’이 성립함을 전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효정은 심정의 실천적 덕목으로 자리매김하여야 함을 알 수 있다.
효(孝)는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공통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는 효(孝)라는 개념이 없어서 효를 ‘혈연적 동정(filial piety)’이라고 번역한다.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효를 가장 중시하는 나라는 한국이다. 아울러 한국은 ‘효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정(情)의 나라’이다. 효정(孝情)이라는 말이 한국에서 탄생한 것은 문화적 필연성을 읽을 수 있다. 동아시아 삼국의 보편성과 한국문화의 특수성이 동시에 포괄된 개념이 효정이다.
개인·국가시대 가족해체와 지구촌가족주의
현대 인류는 ‘가족(family)’에서 ‘국가(nation)’로, 국가에서 다시 ‘지구공동체(global community)’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양이 주도한 근대는 개인(개체)과 국가의 발전시기였다. 그 사이에 가족과 가정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가족의 핵가족화는 이제 도를 넘어 가족의 파편화(fragmentization)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개인은 가족과 사회의 부품처럼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편화된 사회를 정(情)으로 다시 묶고, 인류애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효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로부터 태어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효정사상은 특히 가정의 평화뿐만 아니라 가정-세계, 민족-세계를 하나로 연결함으로써 ‘민족종교와 세계종교’를 통합하는 이데올로기로 성장할 잠재력마저 가지고 있다. 이제 가정은 민족과 국가(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사회의 역동적 윤리
효사상은 가장 원시반본적(原始反本的) 사상이면서 가장 소박한 철학사상이라는 점에서 고령사회의 윤리적 대안으로 떠오른다. 오늘날 노인(어른)과 젊은이(청장년·어린이),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는 심각한 현안이다. 고령화사회는 인구비로 볼 때 효사상을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사회구성원들의 분열과 반목이 늘어날 것이고, 세대 간의 장벽과 불협화음이 빈번할 수밖에 없다.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새로운 인간관계의 모델로서 ‘문화체계로서의 효(孝)’, ‘효정(孝情)문화’가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신구(新舊)세대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예’라는 것은 상호 인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효정사상은 사회문제를 자신(自身)에게 돌이켜서 해결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가장 존재론적 의미마저 있다. 효정은 심정의 실천적 방안으로서 미래인륜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