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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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에 비로소 빛 발한… 구순 지미 카터의 담대한 이야기

지미 카터 지음/최광민 옮김/지식의날개
지미 카터/지미 카터 지음/최광민 옮김/지식의날개


지미 카터는 미국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재선에 실패한 인물이다. 워터게이트 사건 직후 인권과 도덕주의를 앞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카터에게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재임 중 파나마운하 반환과 이란 인질사건 등으로 궁지에 몰렸고, 제2차 석유 파동과 경제위기를 극복해 내지 못하면서 카터는 재선에 실패했다. 오히려 그의 능력과 인격은 퇴임 후에 빛을 발했다. 지금은 세계적인 시야에서 미국적 가치와 이념을 추구하는 지도자의 전형으로 인정받고 있다. 구순을 넘긴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한다. ‘실패한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위대한 지도자’ 반열에 올라 있다.

카터는 인류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공통 가치를 위해 적국이라도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이 책은 2015년 카터 본인이 구순을 기념해 낸 회고록이다. 1924년 조지아주에서 태어나 상원의원, 주지사 등을 거쳐 1977~1981년 재임했다. 원제목은 ‘A FULL LIFE’.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 20컷과 사진, 직접 쓴 시 6수도 넣었다. 1995년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카터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명저 10선으로 꼽은 이 회고록으로 2016년 그래미상(Best Spoken Word Album 부문)을 받았다.

카터는 회고록에서 북핵 중재자로 한반도 위기 해소에 개입한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빌 클린턴은 재임 당시 두 차례나 방북을 반대했음에도, 카터는 결연한 의지로 방북해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를테면 뒤늦은 ‘한반도 짝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재임 시절 박정희와 삐걱거린 끝에 주한미군 철수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든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한국민은 한때 카터를 불안한 인물로 인식했다. 퇴임 후 카터의 노력은 재임 당시 ‘실수’를 만회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 카터는 박정희와의 만남을 가장 불유쾌한 기억으로 묘사했다. 그는 “박정희와의 회담은 그동안 내가 동맹국 지도자들과 가진 토론 가운데 가장 불유쾌한 토론이었을 것이다. 박정희의 젊은 딸이자 북한 암살범에게 살해된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고 있던 박근혜 덕에 분위기가 어느 정도 누그러지긴 했다”고 썼다. 당시 박정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카터 전 대통령에게 자신이 기독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고 한다. 카터는 전두환 정권에 의해 목숨이 경각에 달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명운동에도 나선 적이 있다.

카터는 회고록에서 단호하게 북한을 폭압적 전제정권이라고 비판한다. 다만 경제봉쇄 조치의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고 정권의 기반만 강화시키기에 맞춤형 경제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일성에 대한 언급은 호의적이다. 방북 당시 만난 김일성에 대해 “김일성 주석은 내가 평양을 방문해 미국정부와의 적대관계를 일부라도 해소해줄 수 있을지 3년이나 요청해 왔다”면서 처음에는 마뜩잖았다고 밝혔다. 이후 김일성과 핵 문제를 토론하면서 “서글서글하고 놀라울 정도로 모든 사안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카터가 바라는 미국의 모습은 트럼프와는 대조적이다. 카터는 책에서 “평화, 인권, 환경, 공정 등의 가치가 미국을 존경받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한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빌 게이츠는 이 회고록 추천사에서 “위대한 인물의 담대한 이야기”라고 극찬했다.

그는 북한 주민의 궁핍한 삶을 안타까워한다. 북한 주민의 삶은 곧 인류 모두의 문제이며, 자신은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북 주민을 위해 달려갈 것이라고 했다.

정승욱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