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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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인뉴스] 트럼프의 '무역불균형' 주장은 '거짓'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의 관세부과를 강행했다.

한국산 철강의 대미 수출이 타격은 불가피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미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한 이같은 내용의 철강·알루미늄 규제조치 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서명식에서 “미국 산업이 외국의 공격적인 무역관행들에 의해 파괴됐다”며 “그것은 정말 우리나라에 대한 공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우리를 나쁘게 대우한 많은 나라가 우리의 동맹이었다”고도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한국산 철강이 미국 철강산업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부터 일관되게 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미국에 손실만 낳은 나쁜 무역협정이라는 주장도 짚어본다.

◆"한국이 중국 철강 환적·우회 수출", " 한국산 철강재가 미국 철강산업을 잠식" → 전혀 사실 아님

미국이 한국산 철강에도 고율의 관세 부과를 강행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이 중국산 철강을 수입해 미국에 환적 수출을 하거나 가공해 우회 수출을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 철강이 미국 철강산업을 잠식한다는 주장이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이 "한국이 '미 무역확장법 232조'에 포함된 이유가 환적 수출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8일 미국 워싱턴DC에서 한국 특파원들에게 밝혔다.

환적 수출은 화물을 다른 국적 배로 옮겨 싣는 수출을 뜻한다. 즉 미국은 한국이 중국산 철강을 대량 수입해 거의 그대로 자국에 팔고 있다고 보고, 25%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환적 수출을 한다는 것은 오해이며 철강 수출 품목 중 중국산 소재를 사용하는 비중은 2.4%에 불과하다는 게 산업통상자원부의 설명이다. 중국산 철강 환적∙ 우회 수출은 전혀 사실이 아닌 셈이다. 한국의 대중(對中) 철강 수입 역시 2017년에 전년 대비 2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산 철강재가 미국 철강산업을 잠식한다는 미국의 주장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미국철강협회·철강제조협회는 미 백악관과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한국산 등 수입 철강이 미국의 철강산업을 잠식하고 있다”며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긴급조치를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지난 1일 보도했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對美) 철강 수출은 2014년 497만톤에서 지난해 340만톤으로 31.5% 감소했다. 미국 시장 점유율도 2014년 4.6%에서 지난해 3.5%로 1.1%포인트 줄었다. 한국 철강이 미국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철강 수출 추이가 감소하는 추세다.

국내 철강업계는 미국에 57억 달러를 투자해 3만3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산업부는 2013~2016년 아시아의 조강 설비가 951만t 증가한 반면, 한국은 392만t을 감축하는 등 글로벌 공급과잉 해소 노력도 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6일 미국을 방문해 이같은 내용을 적극 설명하며 한국을 관세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미 정부 관계자 등을 설득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산업부는 중국산 철강의 환적·우회 수출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중견기업연합회 CEO 조찬 강연회에서 “우리는 아니라고 하는데 미국이 자꾸 우리를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FTA는 미국에 손실만 낳았다" →전혀 사실 아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달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 노동자를 위한 '공정 무역' 주제 간담회에서 “우리는 한국과 매우 매우 나쁜 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우리에게 그 협정은 손실만 낳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수입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부가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 개정협상에도 상당한 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한미 양국은 이달 중으로 한미FTA 3차 개정협상을 진행할 전망이다.

백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관세가 한미FTA 협상 기간과 같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 틀 안에서 미국과 많이 협의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협상으로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과의 FTA는 미국에 손실만 낳은 나쁜 협정이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먼저 한미 FTA로 인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2배로 늘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는 FTA 발효 전인 2011년 116억 달러 흑자에서 2016년 233억 달러 흑자로 개선됐다.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대 한국 무역적자가 132억 달러에서 276억 달러로 늘어났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의 무역적자는 FTA 비(非) 수혜품목이 주도했다. 지난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TIC)는 FTA가 체결되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미국의 대 한국 상품무역 적자는 440억 달러(2015년 기준)로 늘었을 것으로 예측했다. 오히려 미국이 FTA의 수혜를 본 셈이다.

또 우리나라의 대미 투자는 2011년 199억 달러에서 2015년 401억 달러로 203% 급증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대 한국 투자는 22.7% 늘었다. 직접투자만 보면 FTA 발효 후 5년간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는 511억8000만 달러, 미국의 대 한국 투자는 201억6000만 달러다.

교역도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무역협회가 지난해 3월 한미 FTA 5주년을 맞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세계 교역은 연평균 2.0%, 우리나라의 전체 교역은 3.5% 줄었지만, 한미 교역은 오히려 1.7% 늘었다. 대미 수출은 5년간 연평균 3.4% 늘었고 대미 수입은 FTA 발효 이후 연평균 0.6%씩 줄었다. 그러나 한국의 대 세계 수입(-5.0%)이나 아세안(-3.6%), 일본(-7.0%) 등을 대상으로 한 수입 감소 폭보다는 작았다.

양국 간 교역 증가에 힘입어 한미 모두 상대국 수입시장에서 점유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우리나라는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이 2.6%에서 3.2%, 미국은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이 8.5%에서 10.6%로 올랐다. 특히 미국의 점유율은 200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결국 한미 FTA는 양국에 이득을 가져다 준 ‘좋은 협정’이며 "미국에 손실만 낳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수치들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세종=박영준 기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