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차 한잔 나누며] “미세먼지는 ‘침묵의 살인자’… 저감책 힘 쏟아야”

정권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장 / 국내 발생 요인 무시할 수 없어 / 중국만 탓하며 수수방관 안돼 / 저감 위한 대중교통 무료 정책 / 정치적 공방으로 번져 안타까워 / 중앙·지방정부 협력 ‘토털 솔루션’ / 모든 수단 동원해 배출량 줄여야
지난 8일 경기 과천시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정권 원장이 미세먼지의 심각성과 정부와 지자체의 공동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제공
“미세먼지는 사람이 만든 원인 물질에 자연이 반응한 재난입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30년 넘게 보건·환경 분야를 연구해온 정권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장은 미세먼지를 “침묵의 살인자”라며 “아시아 4개국 16개 도시 중 초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가 서울이 몽골 울란바토르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8일 경기 과천시 서울보건환경연구원에서 만난 정 원장은 서울시에서 고농도 미세먼지 저감조치로 실시한 출퇴근 대중교통 무료정책에 대해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며 “대중교통 무료정책 실시 이후에는 미세먼지의 심각성 논의보다는 정치적 공방이나 미세먼지 원인을 둘러싼 논쟁으로 번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고 있는 셈”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차량운행이나 난방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태양광발전과 도심 녹화로 도심의 바람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의 보건과 환경 관련 정책의 기반이 되는 연구를 담당해온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은 올해로 창설 72주년을 맞이했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은 국립환경과학원이 초미세먼지(PM2.5) 공식 측정자료를 내기 시작한 2015년보다 15년 빠른 2000년부터 초미세먼지를 측정해 왔다.

서울시의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는 석탄 연료 사용량 감소와 차량 배출가스 저감장치(DPF) 확대 등으로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인다. 초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는 2000년 46㎍/㎥에서 지난해 25㎍/㎥로 45.7% 감소했다. 미세먼지(PM10)는 같은 기간 65㎍/㎥에서 44㎍/㎥로 32.3% 줄었다. 그러나 초미세먼지 농도는 2008년 이후, 미세먼지 농도는 2012년 이후 현재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 원장은 “그동안 집중해온 1차 배출원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줄이기가 한계에 달하면서 농도가 더는 줄지 않고 있다”며 “차량과 난방 연소과정에서 발생하는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이 대기 중 암모니아와 2차 반응하면서 발생하는 초미세먼지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 발생의 원인이 국내보다 국외 비중이 높다는 주장에 관해 정 원장은 “평균적으로 국내 요인이 45%, 국외 요인이 55% 정도로 나오지만 이는 평균일 뿐”이라며 “대기 상황에 따라 국내 영향이 더 클 때도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지난해 1월15∼18일 초미세먼지의 국외 기여율은 첫날 57%에서 마지막 날 38%로 감소했다. 대기가 정체하면서 국내에서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의 반응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반면 고농도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됐던 2015년 10월19∼22일에는 국외 기여율이 첫날 55%에서 마지막 날 72%로 증가했다. 

정 원장은 “학자의 입장에서는 정확한 배출원을 찾아야 하지만 설령 국외 요인이 크더라도 중국 탓을 하면서 우리가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구온난화와 도시화로 도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기온이 올라가면 도심의 풍속이 떨어져 대기정체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이후 대폭 늘어난 오존주의보 발령 일수를 예로 들며 “보통 1년에 10회 안팎으로 발령하는 오존주의보가 2016, 2017년 30회를 넘었다. 기온이 오르면서 대기정체 현상이 늘자 오존주의보 발령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원장은 “올해는 미세먼지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더 심할 것으로 보인다”며 “대기정체에 따른 고농도 미세먼지 주의보 발령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초미세먼지 고농도(50㎍/㎥ 이상) 사례 일수는 2013년 25일에서 2015년 11일로 감소하다가 2016년 13일, 지난해 21일로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을 강조한 정 원장은 ‘토털 솔루션’을 제안했다. 그는 “공기에는 국적도 없고 경기도나 인천 공기도 따로 있지 않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원장은 “현재는 차량 2부제를 강제할 수 없으니 단기적으로는 시민들에게 미세먼지의 위험을 알려 마스크 착용과 차량 이용 자제 등의 자발적인 동참을 촉구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화석연료 비중을 줄이고 도심 녹화로 바람길을 만들고 도심 온도를 낮춰 오염물질 배출원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부터 시 간부들이 미세먼지를 막는 보건용 마스크를 나눠주며 미세먼지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국민은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가, 정부는 깨끗한 공기를 만들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남산에서 서해까지 바라볼 수 있는 맑은 대기 환경을 지키는 데 동참해주세요.”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그래픽>

◆서울시 초미세먼지 농도 추세(단위: ㎍/㎥)
2000/ 46
2002/ 40
2004/ 38
2006/ 30
2008/ 26
2010/ 26
2012/ 23
2014/ 24
2016/ 26
2017/ 25

◆서울시 초미세먼지 고농도(50㎍/㎥ 이상) 사례 일수 (단위: 일)
2013/ 25
2014/ 19
2015/ 11
2016/ 13
2017/ 21
2018년 1월/ 6일
자료: 서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