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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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고소·조서 가명 가능"…성범죄 피해자 지원제도 알고 계십니까

사건 공개 원치 않는 여성 어떻게 / “고소·조서 등 가명으로도 가능 / 신고자 신원보호는 국가 책임”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없어지면 절대 안 됩니다.”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했던 성범죄의 ‘친고죄’ 규정 폐지 여론이 거셌던 2013년 초 재경지검에 근무하던 A검사는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해 이같이 건의했다. 자신이 맡은 성범죄 사건 피해자의 기막힌 사연 때문이었다.

A검사가 맡은 사건은 B(여)씨가 대학생 시절 성폭행을 당했다가 가해자가 종적을 감춰 버린 ‘미제사건’이었다. 가해자가 B씨에게 상처까지 입혀 성폭행 치상사건에 해당했다. 하지만 가해자가 종적을 감춘 상황에서 5년이 흘렀고 검찰은 가해자를 기소중지 처분했다.

수치심에 누구한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던 B씨는 그 사이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가해자가 수사기관에 붙잡혔다. B씨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자신을 증인으로 부르면 신원이 노출돼 가정이 파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A검사는 B씨가 입을지 모를 2차 피해를 우려해 기소유예로 사건을 종결했다.

2013년 6월 성범죄의 친고죄 규정이 폐지되면서 꼭 피해자 고소가 없더라도 수사기관이 가해자를 처벌할 길이 열렸다. ‘성범죄자에게 관용을 베풀어선 안 된다’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결과이다. 하지만 범죄 사실 자체를 공개하길 꺼리는 일부 여성은 불안감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

피해 여성들은 자신이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공개적으로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진술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성범죄 친고죄 규정이 폐지된 상황에서 사건 공개를 원치 않는 여성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대검찰청 관계자는 “연극인 이윤택씨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조서를 가명으로 썼다는 소식이 알려졌는데 이미 10여년 전부터 시행된 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본인이 원하면 재판 비공개 요청은 물론 검찰 내 ‘증인보호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각종 신변 안전 조치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1999년 8월 제정된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에 따르면 성폭력 등 특정범죄 신고자의 신원 보호는 국가의 책임이다. 법무법인 윈앤윈 장윤미 변호사는 “피해자 지원 제도를 모르는 분들이 많아 안타깝다”면서 “널리 알려져 지금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고 피해자들도 적극적으로 의사개진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법무법인 GL 진형혜 변호사도 “요즘은 고소 자체도 가명으로 할 수 있고, 판결문에 나온 피해자 이름까지도 가명으로 기재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