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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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대통령들의 개헌 관련 연설문 뜯어봤더니

“개헌은 내용과 과정 모두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국민개헌이 되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10일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개헌안’ 발의 계획을 밝히며 했던 말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헌법은 국민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며 국회를 향해 “국가의 책임과 역할, 국민의 권리에 대한 우리 국민의 생각과 역량”을 반영하는 합의된 개헌안을 마련해주길 당부했다.

세계일보가 19일 문 대통령의 당시 신년사 가운데 개헌 관련 대목(1148자)을 워드클라우드(글에서 언급된 핵심 단어를 시각화하는 기법)로 분석한 결과 문 대통령은 ‘국민’이라는 단어를 총 23회 사용하며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헌’은 6회, ‘촛불’이 5회, ‘우리’가 4회로 뒤를 이었다. ‘삶·사회·민주주의·약속·국회·합의·투표’ 단어는 3회씩 언급됐다.

“촛불정신을 국민의 삶으로 확장하고 제도화”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논리는 약 11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헌 관련 대국민 특별담화와 상당히 닮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9일 담화에서 “새로운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규범을 담아야 한다”며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을 제안했다.

총 글자수가 3380자인 노 전 대통령 담화에서는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25회로 가장 많이 사용됐다. 노 전 대통령은 5년 단임제가 “임기 후반기 책임있는 국정운영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임기’(14회)와 ‘정치’(13회), ‘선거’(9회), ‘4년’(8회) 뿐 아니라 ‘국정·국가·책임’(각 7회)이 빈번하게 사용된 배경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국민 연설을 통해 개헌 필요성을 거론한 적이 있다. 2010년 8월15일 제65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서다. 하지만 “‘권력의 정치’에서 ‘삶의 정치’로 전환해야 한다”는 대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전 대통령은 미래를 향한 비전 제시보다는 현실정치 구태 타파 쪽에 더 방점을 찍었다. 이 전 대통령은 439자 개헌 관련 대목에서 ‘정치’를 8회, ‘분열’과 ‘갈등’을 각 2회, ‘지역주의·대결·집단’ 등 부정적 어휘를 1회씩 사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극단적인 정쟁과 대결구도 타파”를 주된 이유로 ‘개헌 카드’를 빼들었다. 박 전 대통령은 집권 4년차인 2016년 10월24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당면한 문제들을 일부 정책의 변화 또는 몇 개의 개혁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타파하기 어렵다”며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의 당시 시정연설문(2468자)에서 자주 사용된 단어를 살펴봤더니 ‘개헌’(13회)에 이어 ‘국민’(10회), ‘헌법’(9회), ‘지금·국회’(각 7회) 등이 자주 쓰였다. ‘미래’나 ‘지속’, ‘민주’, ‘발전’(이상 3회씩) 등 긍정적 어휘보다는 ‘문제·체제’(각 5회), ‘변화·근본’(각 4회) 등 부정적 단어가 더 많이 등장하는 것도 박 전 대통령 개헌 관련 연설의 한 특징이다.

이 밖에 3명의 전직 대통령과 문 대통령 모두 ‘이제’, ‘이미’, ‘지금’ 등의 단어로 국회의 조속한 개헌안 합의를 촉구했다. 또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합의’를 각각 6회, 3회 사용한 반면 이·박 전 대통령은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이 개헌 관련해 이전 대통령들과 달리 새로 동원한 단어는 ‘촛불’ 이외에 ‘약속’, ‘후보’, ‘위원회’ 등이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