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만난 최 차장은 올림픽 기간 가장 진땀난 순간으로 개막식 당일을 꼽았다.
기상청은 동계올림픽 개막식 진행 시간 개회식장의 풍속을 초속 3∼5m로 예보했다. 예보에 없던 돌풍이 불어 공연 일정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온갖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할 상황이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실시간 기상상황과 예보가 맞는지 확인했습니다. 개막식이 한창 진행되던 밤 9시쯤이 돼서야 ‘예보가 정확히 맞는구나’ 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기상청은 ‘오보청’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죽하면 ‘기상청 체육대회 때는 비가 온다’는 말이 나오고,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한 국회의원까지 있었을까.
그런 기상청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모처럼 자신감을 얻었다. 올림픽 기간 혹한과 강풍으로 몇 차례 위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기상청 예보가 적중한 것이다. 외국 경기 운영진과 코치진으로부터 칭찬이 쏟아졌다. 동계올림픽 폐막식 예보는 압권이었다.
최흥진 기상청 차장이 지난 20일 기상청에서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기간 기상지원단장으로서 겪은 일들을 들려주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
날씨는 기상청 예보대로 흘러갔다. 예보관들 직감이 맞아떨어진 것일까. 최 차장은 “직감이 아니라 분석 결과”라고 잘라 말했다.
“몇년 동안 올림픽 예보를 준비하면서 모델 결과뿐 아니라 유사 기상 분석도 같이했습니다. 과거 비슷한 날씨 패턴을 찾아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 알아보는 것이죠. 다양한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눈이 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외국 관계자들이 기상청을 신뢰한 것은 아니다. 올림픽 초반 각 종목 감독이나 선수단은 자체 기상예보모델 사이트나 해외 기상 서비스를 통해 본인들 방식대로 평창 날씨에 대처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평창 기상 변화를 몸으로 느끼면서 자체 기상서비스보다 기상청 정보에 점차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 차장은 예보 전문가는 아니다. 30년 가까이 환경부에 몸담아 기후대기정책관 등을 지냈지만 예보는 그에게도 낯선 영역이다. 그렇기에 예보관들을 더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을 믿어야죠. 이분들이 토론할 때 보면 목소리가 올라가고, 서로 얼굴을 붉힐 정도로 격해지기도 해요. 올림픽 폐막식을 앞두고서도 눈 예보를 할 거냐, 말거냐를 두고 격렬한 회의가 이어졌죠. 예보단 전체를 조율하면서 이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하는 게 저의 역할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평창에서 ‘원더풀’ 소리를 들을 실력이었으면, 진작에 오보청 꼬리표를 뗄 수 있지 않았을까.
“역시 인력과 관측 장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올림픽 예보를 위해 평창·강릉에 수십명이 파견됐습니다. 관측 장비도 대거 배치됐고요. 대한민국 전체 예보에 이렇게 많은 인원을 일상적으로 투입한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올림픽을 위해 평창·강릉 일대에 설치된 107개 관측장비 가운데 통합기상관측센서 25대는 동해안에서 대관령을 잇는 구간에 재배치될 예정이다. 통합기상관측센서는 풍향과 풍속, 기압, 온도, 습도를 한번에 측정하는 장비인데, 재배치되면 동풍이 태백산맥을 넘을 때 기상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져본 사람은 어떻게 하면 또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지 안다고 합니다. 이번 올림픽은 기상청이 예보의 자신감을 얻게 된 대회였습니다. 분석능력과 예측기술, 정보전달의 경험을 일반예보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