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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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마음에 파동을 남기는 매 순간이 내겐 명상의 시간”

50년간 ‘명상사진 작업’ 송영숙 작가
작정을 하거나 예정을 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치다 마주하는 것과 마음을 담아 영감을 나누는 것이 작업이다. 거창한 장비도 없다. 휴대전화기나 휴대용 디지털카메라가 작업 도구의 전부다. 순간마다 색다른 현상으로 다가오는 것에 몰입하기 위해서다. 그 찰나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들은 차단된다. 대상에의 몰입, 바로 명상이 사진이 됐다. 지난 50년간 ‘명상 사진작업’을 해온 송영숙 사진작가의 이야기다.

“제겐 사진작업을 하는 순간들이 명상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사진을 할 수 있는 매 순간이 명상이라고 말하는 송영숙 작가. 그는 자신의 작업을 주변 사물과 교감하면서 얻어지는 새로운 각성의 산물이라고 했다.
그의 사진전(내달 7일까지)이 열리고 있는 서울 강남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그와 마주했다. 전시 주제 역시 명상이다. 그에게 명상은 사진을 찍으려 했던 매 순간이었고, 기쁨이었고 엔돌핀이 도는 시간이었다.

“스치는 대상이 마음에 파동을 불렀을 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이 제겐 명상이지요.”

전시장에 들어서니 바람에 스친 듯한 야생화가 가장 먼저 눈인사를 보낸다. 몽골 초원에서 휴대용 사진기로 찍은 것이라 했다. 한두 개의 꽃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 이외의 꽃들은 흐린 풍경이다. 강한 바람에 흔들리고 산발된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모진 바람이 몰아치는 초원길에서 야생화를 보니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질긴 생명력에 절로 끌렸지요.”

그는 꽃 높이만큼 어깨를 낮춰서 꽃들과 얘기를 나누며 작업을 했다. 땅에 엎드리다시피 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 파라다이스 같은 환희가 넘쳐흘렀다. 밝은 톤의 사진들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식물도감의 야생화 사진들에서는 볼 수 없는 생명력이 감지된다. 모든 사건은 신이 지나가고 있다는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말을 상기시켜준다. 그러기에 신이 지나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송 작가의 생명력도 그런 것일 게다. 사실 우리가 본다는 것은 우리가 유용한 것만 지각할 뿐이다. 각성을 하고 새로운 눈을 가져야만 우리는 비로소 신의 궤적을 향유할 수 있다고 들뢰즈는 말했다. 송 작가도 야생화에서 식물 그 너머의 진정한 지각을 보았을 것이다. 신의 소리, 생명의 소리다.

“거미줄같이 새로운 시야가 끝없이 펼쳐지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숭고미가 아닐까요.”

그가 생명의 지평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넘쳐나는 바닷물의 미덕을 떠올리게 해준다. 유난히 그의 바다작업이 많은 이유도 우연은 아니다. 가족과 함께 했던 제주바다와 터키 흑해 사진이 대표적이다.

“추석휴가로 식구들이랑 제주 바다낚시에 나선 적이 있어요. 저는 낚시를 안 하고 두 시간여 바다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는 바다 얼굴을 잡기 위해 카메라를 흔들리는 뱃전에 밀착시키며 파도와 긴 씨름을 해야 했다. 바다의 율동마저도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바라보는 바다는 지평선이 멀리 있는 바다지요. 저는 흔들리는 배 난간에 카메라를 걸쳐놓고 제가 좋아하는 앵글로 바라봤어요. 같은 바다지만 수많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햇빛에 반사되거나 바람에 일렁이는 변화무쌍한 모습이지요.”

그에겐 그냥 바다가 아니라 명상의 바다였다. 두 시간여를 무념무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는 그렇게 흐리고 잔잔한 터키 흑해도 지나갔다.

그에게 제주바다와는 다른 명상의 공간이었다.

“제가 만들어진 억지스러운 사진을 거부하고 찰나의 예술사진을 즐기는 것도 명상의 한 과정으로 보면 됩니다.”

이를 통해 그는 순수회화에서 놓치고 있는 지점들을 잡아 내려 한다. 대상에 마음을 불어 넣고 화답을 구하는 식이다. 그는 여행길에 폴란드 마이다네크 나치수용소를 들른 적이 있다. 가스실의 풍경도 작품이 됐다. 등불과 스며들어오는 미세한 햇빛, 그리고 그 아래 바닥으로 푸른빛이 감돈다. 철판으로 내부벽을 만든 가스실에서 죽어간 유대인에게 절로 묵념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샤워를 마치면 저녁만찬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짓말에 샤워장이 붙어 있는 가스실로 유인됐던 유대인들이었다.

“잔인한 역사의 공간에서 인간 근본에 대한 명상이었지요.”

동백꽃과 잎을 통해 삶의 종착역을 명상케 만드는 작품 ‘강진’.
강진 동백꽃 군락지도 그의 사진 소재로 등장한다. 한두 개의 동백꽃 송이와 잎이 땅에 떨어진 풍경이다.

“동백꽃이 덩어리째 떨어지는 모습이 ‘죽어도 함께, 살아도 함께’라는 가족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온 가족이 한꺼번에 뭉쳐서 떨어지는 것이 가슴 아프지요.”

작품 속 동백 잎이 역설적이게도 ‘축원의 뿌림’ 같다. 송 작가는 1980년대 초부터 벽 작업도 해 왔다. 베이징과 로마 등의 오래된 벽면이 주요 대상이었다.

“벽이라는 것은 집이라는 얘기고 집이라는 얘기는 사람 사는 이야기거든요. 옛날부터 그 집안의 벽을 보면 그 속의 인생을 알 수 있다고 했어요.”

그의 벽 작품은 벽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터키의 말린 찔레꽃도 작품에 등장한다.

“한 노파가 땅에 떨어진 찔레꽃을 소쿠리에 담아 말리고 있는 광경을 보고 사람들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어요”

그에게도 이야기를 던지는 것 같아 카메라에 담았다. 떨어져 마른 꽃잎에서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꽃상여를 봤다. 한 송이에 흰색과 핑크색을 가진 손바닥만 한 거대 터키 장미는 특별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크기와 중량감을 클로즈업으로 드러냈다.

송 작가에게 모든 작업은 명상의 소산물이다. 그는 평소에도 색다른 명상법을 즐긴다.

“사진명상이 중심이지만 ‘휴대전화 게임’ 명상도 즐기고 있습니다.”

그는 1980년대부터 게임을 했다. 머리를 쓰지 않는 손가락만 움직이는 단순함이 무념무상에 이르게 한단다.

“그냥 몸이 움직이는 대로 게임을 해요. 머리 아픈 TV뉴스가 나오면 보지 않고 소리만 듣고 게임을 하지요. 몸이 가는 대로 리듬을 타는 명상입니다. 제겐 머리가 맑아지는 명상이지요.”

그는 명상을 셔터 삼아 사물의 긍극에 이르려 하고 있다. 사진계의 거장 제리 율스만도 “송영숙의 작품은 마주하면 자연과 교감하면서 깊은 사색의 장으로 들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고 평했다. 명상적 사진이란 얘기다.

편완식 객원미술전문기자